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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월
    관객과 배우 2015. 5. 25. 22:04

     

     

    월/이 원 화

           

    오월은 오는 듯 머무는 듯 간다.

    공원의 아침은 사랑 위해 새벽이슬로 샤워하고 꽃가루로 화장을 한다. 때죽나무꽃은 창호지를 바른 방문으로 비쳐드는 햇살의 빛깔로 흩뜨리지 않고 줄 따라 피어있다. 떨어진 꽃은 답쌓여 상크름한 향기를 흘린다.

    마주 보고 서있는 쪽동백나무는 때죽나무와 흡사하지만 매달려있는 꽃의 수가 다르고 이파리의 크기가 다르다. 푸르디푸른 왕벚꽃나무 아래 오리가족은 신호위반으로 뒤뚱. 사람도 따라 걷는다. 보랏빛과 노란 꽃창포와 호숫가의 푸름은 보색의 수채화를 만든다.

    호숫가 조팝나무꽃은 참새가 날아가는 길 따라 휘어져 있다. 꽃은 하얀 레이스 성보를 머리에 쓰고 기도하는 여인의 목덜미다. 멀리 보이는 뾰족한 성당의 십자가는 오월을 뒤돌아보게 한다. 막돌 틈의 영산홍은 지난 사월의 화려함 잊지 않으려 떨어진 꽃잎에 이름을 남기고. 첫사랑과 걸었던 오월도 보인다.

     

    꽃이 피었었구나 이 길에 꽃 같은 사람과 걷던 그날은

    향기 짙은 님에 취해 볼 수 없었네 아 돌 들이 있었구나 이 길에

    바위 같은 그대와 걷던 내 마음 가슴 넓은 그대 보며 작아 졌었네

     

    가곡 <혼자 걷는 길>을 부른다. 지금은 혼자서, 가버린 지난 시간들이 바위틈에 꽃이 되어 머물고 있다.

    산책길 건너 높은 언덕 위 샛길로 자동차는 달리면서 누군가 기다리는 소녀의 머릿결 같은 인동덩굴을 흔든다. 오래 된 오월이 바위벽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무엇이든 반복하여 변화하다가보면 면역이 생기고 둔해지겠지만 자연에 대한 감정만큼 갈수록 예민해진다. 자연의 변화에 민감해지는 것은 세월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고독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외로울 때나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낄 때 나는 종종 나무가 우거진 숲에 나 자신을 풀어놓는다. 나무에 핀 꽃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오월이 크게 보인다. 카페 나무계단을 오르는 순간 청보라 빛 클레마티스가 실같이 가느다란 넝쿨에 매달려 큰 얼굴로 피어오르고 있다. 그를 닮았다. 흰색 바탕에 청 보랏빛.

    오월의 숨결과 기억은 커피를 놓고 돌아서 가는 소녀 따라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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