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글, 그 안의 나_이원화 에세이

이원화에세이<꽃, 글, 그 안의 나>_아까 그 사람

갑자기여인 2019. 2. 13. 17:52

꽃, 글, 그 안의 나

이원화 에세이

                                                                                                              

                                                                                                                                                   ↓  작품:이원화(2011년)

 

아까 그 사람

 

 

   한참동안 지하철 자리에 앉아 읽었습니다. 저만 앉아서 가는 것이 미안해 앞에 서서 가는 분께 자리를 양보했더니,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앉아서 읽으라는 표정을 주었습니다. 지하철은 계속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번 역은 경복궁역'이란 안내방송에 어미 따라 나서는 송아지처럼 후다닥 내렸습니다. 며칠 전 동아일보에 "경복궁 단풍 이불 밑 숨어들고 싶어라"라는 제목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경복궁의 가을은 달랐습니다. 단풍 빛깔은 설날 아침의 치마저고리의 원색이면서도 맑고 깨끗하였습니다. 궁 안의 소나무들도 청직의 신하를 닮았는지 충직하고 견실해 보였습니다. 붉은 감 하나도 떨어트리지 않은 감나무, 말채나무, 생대추 속살 빛깔의 회화나무, 앙상한 살구나무도 있었습니다. 아름드리 모든 나무들이 궁의 위엄을 닮아 중후한 품격이 있어보였습니다. 바람도 조심스레 흐릅니다. 경복궁역에서 지상으로 나와 궁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왼편으로 갔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은행나무 아래 금가루를 뿌려서 효과를 낸 영화의 한 장면같이 떨어진 은행잎이 찬란했습니다. 가지들은 가슴으로 합창을 부르는 듯 하늘을 향해 노래의 몸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 모습으로 몸을 움직여 촬영했습니다. 새벽에 떠오르는 예쁜 알사탕 같은 은행잎을 밟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과 마주보며 행복한 소통을 갖고 있는데, "저기 한 장 찍어드릴까요?"하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쳐다보니 아까 지하철 안에서 제 앞에 계속 서있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은행나무 꽃을 보신 적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