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_정호승

갑자기여인 2020. 1. 30. 23:12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정호승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 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해마다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정호승 시집 《여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