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글, 그 안의 나_이원화 에세이

이원화 에세이 <꽃, 글, 그 안의 나>_오줌싸개

갑자기여인 2020. 11. 23. 01:13

 

 오줌싸개

 

 

 

*오줌싸개가 정승 판서 되다

 

그림책 오줌싸개가 정승 판서 되었다네를 읽으니 할머니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린다. 얘들아 오줌 누고 자거라.

오줌을 가리지 못하거나 어쩌다가 실수로 오줌을 지리는 아이를 오줌싸개, 의학적으로는 야뇨증이라 한다. 사라진 옛 풍습으로 오줌을 가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잠자리에서 오줌을 싼 아이에게는 다음 날 아침에 머리에 키를 씌우고 쪽박을 들려서 이웃집으로 소금 동냥을 보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아이가 키를 쓴 것만 보고도 이유를 알기 때문에 쪽박에 소금을 퍼 준다. 부지깽이나 부엌 빗자루로 키를 두드리며 다시는 오줌을 싸지 말라고 혼쭐을 낸다. 아이는 호되게 놀라고 창피해서 스스로 조심하여 오줌을 가렸다. 키를 쓴 경험이 있던 아이는 <오줌 누는 새에 십리를 간다>는 속담에 일찍 눈을 떠서 정승 판서가 되었을까.

 

 

*오줌싸개지도와 윤동주

 

빨래 줄에 걸어 논/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계신/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계신/만주 땅 지돈가?

 

지난밤에 동생이 오줌으로 요에다 지도를 그렸다. 시인은 오줌싸개 지도를 보며 꿈에 가 본 엄마계신 지도인가, 돈 벌러 간 아빠가 계신 만주 땅 지도인가 하고 의문을 던진다. 장난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꿈과 현실이 달라 괴로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엿보인다. 윤동주는 우리들의 영혼을 맑은 그리움으로 이끌어 주며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줌싸개와 현대미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젊은 모색2014' 전이 열렸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피폐한 현 사회에서 심리적인 불안을 겪고 있는 젊은 세대인 8명의 작가들이 사회 저변의 공유된 고민과 현실들을 독창적인 시각적 언어로 조형화하는 작품을 전시하였다.

김도희의 <야뇨증>이란 작품 전시장에 들어가니, 냄새가 역겨워 토할 것 같아 뛰쳐나왔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전시할까, 더더욱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이니까 가능하였다.

작품은 가로8m, 세로3m 크기의 장지에 100리터 가량의 어린아이의 오줌을 붓고 말려서 만든 것이다. 비닐로 막은 칸 속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누런 구름풍경처럼 보이는 작품은 반복적 피해의 대상인 아이들의 소변을 중첩하여 만들어졌다. 우리사회의 무기력과 무능력을 지목하며 언제까지나 해독되지 않을 현실을 통렬하게 깨닫게 해 주는 작품, 뒷짐 지고 감상할 시각물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안전한 일상을 흔들며 각자의 코앞에 생생하고 지독한 실재로서 들이밀고 싶은 것.

야뇨증은 자신의 의지대로 소변활동을 조정할 수 있어야할 나이에 불구하고 조절을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증상. 야뇨증에 걸린 아이에게는 그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 지체되었다는 것을 탓하기에 앞서 그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특정인물을 위한 현대미술이라 생각했는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이며 추함의 미학에도 촉각과 실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산막이 오줌싸개

 

괴산 산막이 마을의 돌 오줌싸개는 제 키만 한 키를 쓰고 있다. 돌 바가지를 들고 배꼽과 아랫도리까지 내어 놓고 활짝 웃고 있다. 부끄럽기는커녕, 당당한 모습이다. 실수는 사람이니까, 어린 아이니까 한다. 실수하며 얻은 체험은 귀한 것이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오줌싸개 동상을 흔히 본다. 전 세계에 있는 오줌싸개에게 키를 전부 씌어주면 어떨까 개그 한번 해 본다.

 

 

*동백꽃에 오줌 싸기

 

별에서 온 그대의 촬영지 해상공원 장사도, 온실 앞에 서 있는 오줌싸개는 포물선을 그리며 쉬지 않고 누고 있다. 부끄럽다 하면서 볼 것 다 보고 있는 소녀상 곁에서. 오줌싸개 물로 살고 있는 수련, 부들, 개구리, 물 달팽이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