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좋은 수필< 냉면의 쨍한 맛 외 1편/이근화

갑자기여인 2021. 7. 14. 15:51

이름 없는 것들을 부르는 시인의 다정한 목소리

이근화 산문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에서

 

 

냉면의

쨍한 맛

 

                  내가 나고 자란 변두리 재래시장 골목에는 오래 된 냉면집이 있다. 냉면집은 중년의 나보다 나이가 많다. 원래 주인이었던 할머니는 이제 나오지 않고 그 아들이 운영한다. 주인 아저씨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땅딸막하다. 주문을 능숙하게 받고 계산은 더 잘 한다. 그 집의 냉면 맛은 고급 냉면과는 아주 다르다. 깔끔한 육수에 얇은 편육이 아니다. 그러니까 골목 냉면은 달고 고소하고 시큼하고 쨍한 맛이다. 그런데 또 그게 그대로 중독성이 아주 강하다. 그건 냉면이 아니라 골목 냉면이다. 종류가 다르다. 남편도 덩달아 오늘은 냉면이 아니라 골목냉면이 먹고 싶다고 말한다. 유학 간 동네 친구도 몇 년에 한 번씩 들어오면 꼭 그걸 먹고 간다. 곱빼기로 싹싹 쓸어 먹고 돌아간다. 단가를 맞추기 위해 분명 중국산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쓸 텐데 평소에는 유기농과 저농약, 국산을 찾다가도 골목에서 무너진다. 우래옥도, 을지면옥도 아니다. 평양냉면도, 함흥냉면도 아니다. 샘밭막국수도 다 제치고 골목으로 냉면 먹으러 가는 더운 여름날이 있다.

 

 

 

밥상 노래

 

    결혼 7년 만에 낳은 첫딸이 유치원에 가서 밥상 노래를 배워 왔다. 시어머니께서 그 노래를 듣고 무척 좋아하셔서 남편은 자꾸 노래를 시키고, 아예 녹음을 해두었다. 듣고 있으면 웃겨서 눈물이 난다.

    쌀밥 보리밥 조밥 콩밥 팥밥 오곡밥 된장국 배춧국 호박국 뭇국 시금치국 시래깃국 배추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갓김치 동치미 깍두기 가지나물 호박나물 콩나물~”

   그걸 다 어떻게 외웠는지 신기하다. 딸아이는 다섯 살 때 유치원에서 먹은 김치가 매워서 울었고, 일곱 살 때는 태권도 선생님이 사준 빨간 떡볶이를 물에 헹궈 먹었는데, 이제는 청양고추가 들어간 매운탕을 후후 불어 잘도 먹는다. 딸 파이팅.

    그래도 과일 다 먹은 다음에 씨를 자꾸 화분에 심지 말고 알 수 없는 싹들이 자꾸 화분마다 솟아나잖아. 베란다가 알 수 없는 이파리로 무성해진다. 하굣길에 나팔꽃, 분꽃, 봉숭아꽃 씨앗을 거둬 오느라 늦어지는 딸아, 차 조심해라, 무단 채취를 금하노라, 나팔꽃이 빨랫대를 휘감으면 빨래 널기 성가시다. 알겠지. 그냥 밥상 노래나 계속 부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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