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좋은 수필< 이해인_합창을 할 때처럼

갑자기여인 2022. 2. 3. 22:21

                                            

 

여중 시절, 교내 합창대회에서 우리 반이 일등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친구들과 새벽마다 모여서 연습하며 합창의 아름다움에 빠져들던 순간을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한번씩 음악회에 가더라도 나는 독창회보다는 합창회를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언젠가 매우 유명한 러시아 여자 성악가의 독창회에 간 일이 있는데, 그녀가 노래를 매우 잘 불렀음에도 중간에 자리를 뜨는 이들이 더러 눈에 띄었습니다. 아무리 노래를 잘 하는 이의 목소리도 한 시간 이상을 계속 듣다 보면 지루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수도원에서는 일상의 기도도 노래로 부를 때가 많은데, 특히 부활절이나 성탄절에는 평소에 부르기 어려운 합창 미사곡을 연습해서 부르곤 합니다. 남성의 소리가 빠진 여성 3부 합창은 그리 웅장하진 않아도 나름대로 청아하고 순결한 느낌을 줍니다. 이 노래를 들으려고 꽤 많은 교우들이 일부러 수녀원 미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한솥밥을 먹어도 그렇지, 어쩌면 그렇게 많은 분들의 음성이 한결같이 하나일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할 정도예요."

   "무어랄까,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아주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니까."

   가끔 우리 노랫소리를 들은 이들의 이와 같은 말을 들으면 "아이, 뭘요. 저희는 전문가도 아니고··· 어쩌다 들으시니까 그렇지요···." 라며 적당히 얼버무리지만, 그래도 은근히 기쁜 마음입니다.

 

 

                                            ↓ 그림:하정민(이해인 산문집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에서 )

 

 

   높은 음의 소프라노는 소프라노대로 낮은 음의 알토는 알토대로, 그리고 높은 음과 낮은 음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는 중간음의 메조는 메조대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써 이루어내는 그 아름답고 겸손한  합창의 조화를 나는 늘 새롭게 사랑합니다.

   다른 파트가 솔로를 하는 동안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쉴 수 있으나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 긴장감을 합창에서 배웁니다.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고요하고 참을성 있게 깨어 있는 깨달음과 인내를 합창에서 배웁니다. 다른 이의 목소리에 조심스레 귀를 기울이는 예민합과 지혜를 합창에서 배웁니다. 목소리가 빼어나도 혼자서만 튀지 않고 다른 이와 맞추어가는 겸손과 양보를 합창에서 배웁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개성 있는 목소리들이 서로 다르면서도 한 목소리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때까지는 얼마나 고된 연습과 훈련을 거듭해야 하는지요.

 

    (······)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우리의 삶 또한 합창을 닮았다고생각합니다. 이제 또 한번의 새 달력을 벽에 걸면서 나는 오늘 이렇게 기도해봅니다.

 

"합창을 할 때처럼/오늘도 저에게/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삶의 무대 위에 다시 한번/저를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합창을 할 때처럼/이기심을 버리고/절제하는 기쁨으로/매일 살게해주십시오// 합창을 할때처럼/다른 사람들을 존경 하고/그들의 소리와 행동에 귀기울이는/사랑의 인내를 실천하게 해주십시오//합창을 할때처럼/틈새의 침묵을 맛들이면서때를 기다릴 줄 아는/겸손을 배우게 해주십시오/그리고 무엇보다/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으로/삶의 길을 걷게 해주십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