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782

이근화 /세상의 중심에 서서

「세상의 중심에 서서 」 이근화 도서관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책을 날마다 주워 와서 번호를 매기고 뜯긴 책장을 붙였습니다 나란히 꽂았습니다 캄캄하고 냄새가 나서 나는 이곳이 좋아요 조금 더럽고 안락해서 날마다 다른 꿈을 꿉니다 도서관이에요 책들은 하룻밤이 지나면 숨을 쉬고 이틀 밤이 지나면 입술이 생기고 사흘째 팔다리가 태어납니다 나흘째 사랑을 나누고 먼지가 가라앉습니다 나는 뻘뻘 땀을 흘리며 혼자 길고 긴 산책을 합니다 멀리서 책을 한권 또 주워왔습니다 이번에는 코가 없고 감기에 걸린 놈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함께 커피를 마시고 토론을 했습니다 불을 다 끈 도서관에서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 서서 구멍 난 내일을 헌신짝 같은 어제를 조용히 끌어안았습니다 도서관이었기 때문입..

관객과 배우 2023.08.16

인생은 길다/문효치

윤재천 엮음 김 종 그림 《그림 속 아포리즘 수필 》 「인생은 길다」 문효치 흔히 세월은 빠르고 인생은 짧다고 말한다. 나도 가끔 그렇게 말하곤 한다. 우리 속담에 '세월은 문틈으로 보는 말처럼 달린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는 말은 세월이 너무 빨라서 인생이 짧음을 뜻한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라느니 '인생여초로(人生如草露)'니 '소년역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등의 말도 있다. 한 손에 막대 들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의 이 시조 뒤에서 들려오는 그 한탄이 가련할 지경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인생은 충분히 길다.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는 그 분의 시할머니(나에겐 고조할머니)에게서 들은 말을 여러 번 되뇌곤..

관객과 배우 2023.08.10

사람의 됨됨이/박경리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은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것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 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관객과 배우 2023.08.01

매미 손님

*참매미: "맴-맴-맴-맴-매애앰-"반복해 울다가 마지막에 음을 높혀서 "매애↗(10여초 동안 유지)...애애애..."하며 마무리 짓는다. *말매미(왕매미): "쐐~~애애애애에~" *애매미: "르르르르르르르르르-츠-와이치-르르르르르와아치- *쓰름매미: "쓰-름 쓰-름" 에서 옮겨 온 한국 서식종 매미들의 울음소리 일부분입니다. 비는 또 다음날에 내리고 앞 창문에 둘, 뒷 창문에 또 둘, 꽃방 창문에 하나, 마치 야외 카페에 모인 듯, 모두 배 흔들며 연미복 날개를 흔듭니다. 자바섬에서 도착한 마라 무테 커피를 내려 그 향을 맡게 하고 싶습니다 소나기 속 맑은 아침 앞 베란다 창문에 손님 하나, 반가워 가까이 다가 서니 울음소리 뒤쪽에서 크게 들려옵니다 놀란 뒷베란다 창문의 손님 둘, 매암맴 서로서로 소리..

관객과 배우 2023.07.18

행동하라, 살아 있는 현재 속에서

장영희 영미시산책 《 축복》 「인생찬가」 헨리 왜즈워스 롱펠로 슬픈 가락으로 내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단지 허망한 꿈일 뿐이라고! 삶은 환상이 아니다! 무덤이 삶의 목적지는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행복해 보인들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죽은 이들이나 파묻게 하라! 행동하라, 살아 있는 현재 속에서 행동하라! 그러니 이제 우리 일어나 무엇이든 하자 그 어떤 운명과도 맞설 용기를 가지고 언제나 성취하고 추구하며 일하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자 살다보면 살아가는 일도 타성이 되어버립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이 겪다보면 익숙해져서 그저 그런가 보다. 그냥 이렇게 살다 떠나지, 별 생각 없이 사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우레 소리 같습니다. 무력감과 권태에 빠져 잠들어버린 영혼을 깨우는 소리입니다. (·..

관객과 배우 2023.07.17

달팽이와 백석의 <수라>

아파트에 수요일마다 야채차가 옵니다 뚱하지만 밉지 않은 아줌마 사장님과 '새로운 게 뭐 있어요?' 하며 인사를 나누었지요 사장님은 상자를 열더니 나물을 들어 올렸습니다. 처음 보는 부지깽이나물이라 자세히 보는데, 시든 잎에 달팽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거 제주도 애월읍에서 온 것이어여 허허' '나에게 주세요'하며 검정 봉투 속에 그걸 넣었지요 그렇게 해서 제주도산 달팽이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아침마다 달팽이가 사는 플라스틱 통을 씻고 김치냉장고에 둔 부지깽이나물 몇 잎을 바꿔 넣어주었지요 다음날 통을 들여보니 검정 털실 오라기를 물에 불린 것 같은 똥도 보였습니다 며칠 후 부지깽이나물이 다 떨어져 우리가 먹는 상추를 넣어줬더니 신이 나서 먹습니다 왕성하게 상춧잎을 먹고 슬슬 기어 다니더니 그만 똥을. ᄏ..

관객과 배우 2023.07.08

나태주/다시 9월이

「다시 9월이」 나태주 기다리라, 오래오래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지루하지만 더욱 이제 치유의 계절이 찾아온다 상처받은 짐승들도 제 혀로 상처를 핥아 아픔을 잊게 되리라 가을 과일들은 봉지 안에서 살이 오르고 눈이 밝고 다리 굵은 아이들은 멀리까지 갔다가 서둘러 돌아오리라 구름 높이, 높이 떴다 하늘 한 가슴에 새하얀 궁전이 솟았다 이제 제각기 가야할 길로 가야할 시간 기다리라, 더욱 오래오래 그리고 많이.

관객과 배우 2023.07.03

한국근현대미술전 다시 보다 _ 보다

소마 미술관 2023. 4. 6 -------8.27 1. 우리땅, 민족의 노래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이인성 구본웅 박생광 2. 디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 배운성 이쾌대 변월룡 황용엽 3. 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 나혜석 이성자 방혜자 최욱경 천경자 박래현 4.추상, 세계화의 도전과 성취 김환기 유영국 한묵 남관 이응노 5, 조각, 시대를 빚고 깎고 김종명 권진규 김정숙 문신

관객과 배우 2023.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