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시도다 171

봄과 함께 걷는다

마스크를 쓰고 무작정 걷기로 했다. 그 동안 무릎에 이상이 생겨서 마음 놓고 걷지를 못했는데 3월 막바지, 봄 물든 버드나무와 냇물에 비친 버드나무가 서로 자기가 진짜라고 우겨도 그 대답은 할 수가 없을 정도, 한컷 찍고 구미교까지 걸었더니 발바닥은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다. 조심스레 되돌아서 재건축하는 아파트 틈길로 걷는데, 그 담벽에 느티나무와 산수유 꽃이 속삭이고 있다. 큰 기쁨을 안고 봄과 함께 그냥 걷는다.

수필은 시도다 2024.03.25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 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에 걸려 있고 싶다." 시인 김광규의 「대장간의 유혹」이란 시 한 부분입니다. 며칠 전 산책길에서 밤나무에 걸려 있는 빗자루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낙엽을 쓸어 모으던 싸리비, 흙을 쓸던 플라스틱 빗자루가 녹음 우거진 숲 속 밤나무에 걸려 있는 모습은 편하고 즐겁고 자유스러워 보였습니다.

수필은 시도다 2023.06.08

발그무레한 겨울꽃

오늘 '부럽지가 않어' 라는 장기하의 자작곡이 웬지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 데, 전 오늘 이 곳에서 '남이섬이 부럽지 않아, 그래 부럽지 않어'라는 가사로 고쳐 부르며 여러번 다녀온 추억의 남이섬을 생각했습니다. 많이 갔었죠. 특히 메타세콰이어 숲은 4계절 아름다우니까요. 요즘 무서운 날씨에 벌벌 떨며 세월의 다리에 동여매어 산책도 멀리 가지 못하고 동네 한바퀴가 요사이 제 삶의 일부입니다. 오후 2시를 넘기면 주섬주섬 옷을 입고 마트에 가서 물건을 배달시키고 산책을 합니다. 가까운 동네 건축상 받은 멋진 가나안 교회 옆으로 접어 들면 구미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빙판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그네를 타는 아이들, 살얼음 놀이하며 떠드는 아이들 소리가 퍼져나오는 구미초등학교 후문에서 불곡산 방향으로 작은..

수필은 시도다 2023.01.09

눈(雪) 물방울의 그림

흰 눈이 내리면 늦은 밤이라도 뛰어나가 두팔을 벌리고 얼굴에 눈 맞으며 반가워했습니다. 올해는 눈이 무서워서 '창문을 열지도 못하고 그냥 내다보기만 했다'고 했더니 다음날 아들의 출근 길에 동승하여 차 속에서나마 눈을 보며 호사를 누렸습니다. 눈은 온 세상을 흰빛깔로 채색하기 위해 내리고 또 내리고 있습니다. 차창을 뚫을 듯이 부닥치면서 내리던 눈송이가 순간 창문에 머물더니 투명하게 변하여 그 속에 그림을 보여줍니다. 바로 밖의 풍경을 묘사하여서. 눈(雪) 물방울 속의 풍경은 신비스럽고 오묘합니다.

수필은 시도다 2022.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