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서정주
갑자기여인
2014. 9. 1. 22:58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서정주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 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
로 날이 날마다 칠해져 온 곳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
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
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에
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