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허형만 시인의 신작시-운문사 가는 길 외 1편

갑자기여인 2015. 1. 9. 11:22

▣한국예술상_시부문_허형만 시인|신작시

 

운문사 가는 길 외1편

                                          허형만(제7회 한국예술상 수상)

1.

햇살도 무르익는

가을도

늦가을 날

 

감나무마다 부처들이 묵언정진 중이다

 

벌겋게

불길 먹음은

등 하나씩 켜들고

 

2.

구름 문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

 

천지가 화엄이니 버릴 것 버리란다

 

절집에

들어오려면

마음까지 버리고 오란다

 

 

장날

 

초야에 묻혀 살다보니 배운 게 없어

저마다 삐툴빼툴 맞춤법도 무시한

이름표 하나씩 가슴에 달고

잘 마른 목숨들이 플라스틱 상자 안에 얌전히 들어앉아 있다

 

누룸나무 옥쑤쑤수염

개똥쑥 물나무 젠피나무

가시외가피 헛계나무

참빗쌀 옷나무 창꼿뿌리

야간문 횟점씨꼿 입모초

 

자신의 가지 위에서 쉬었던

포근한 눈송이의 체온은 잊은 지 오래

새의 따스한 깃털도 잊은 지 오래

어느 산속 어느 골짝에서 왔는지 서로 묻지도 않고

한 생애가 다 그렇지 않느냐는 듯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