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어느 봄에 쓴 편지 1 _정란희
갑자기여인
2015. 5. 8. 21:32
한국작가작품선 67
정란희 제2시집
『작은 걱정 하나』중에서
어느 봄에 쓴 편지 1
정란희(한국문인협회 성남지부 회장)
아버지
지금 여기 지상은 무고 합니다
지천으로 봄꽃은 화려하고
먼 길 날아드는 황사도 견딜만합니다
참으로 다행인 일도 있습니다
땀 흘리는 노동이 인정을 받고
대가도 적당해지는 듯 합니다
슈퍼 진열대 위에 올려 진 배추 한 포기가
제값을 하고 있습니다
투명한 랩으로 잘 포장되어
과일 옆에서 육천오백원 당당합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갈아 엎은 양파도 곁에서 그만 합니다
그런데 자꾸만
물 맑은 냇가에서 그물망으로
아버지와 함께 물고기 잡던 일 생각나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