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마음으로 작정하지 않아도 엉거주춤 늙는다
눈 부릅뜨고 있어도 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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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구백팔십팔년 28년전
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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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화 에세이 『꽃, 글, 그 안의 나 』중에서
88서울올림픽대회
무궁화 코사지
이원화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 마음 되자
손잡고
1988년은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가 역사적인 막을 올렸다.
지구촌 160국 1만3천여 명이 참가, 올림픽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 9월17일부터 16일간 23개의 정식종목으로 선전하여 대한민국은 제4위에 올랐다. 서울의 젖줄 한강에서 강상제를 지내고 잠실경기장으로 옮겨진 용고가 높이 울려 퍼졌다. 멀리 지중해 그리스올림피아의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 하늘의 불이 마침내 주경기장 성화대에서 높이 타오른다. 5만 관중의 함성과 잠실벌에 오른 성화, 그 성대한 개회식은 3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뇌리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꿈의 제전, 평화의 잔치, 자랑스러운 민족의 한마당이었다.
사단법인 한국꽃꽂이협회 소속된 운정꽃꽂이중앙회를 이끌면서 최대의 영광스런 기회를 갖게 되었다. 서울올림픽대회 육상경기본부의 여러 장소에 꽃을 장식하는 자원봉사자 공개모집에서 꽃꽂이요원으로 재현꽃꽂이회와 운정꽃꽂이회가 선발되었다. 재현꽃꽂이회는 육상경기장을 맡고 운정꽃꽂이회는 농구경기장을 맡기로 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전재현 회장께서 농구경기장을 맡기를 희망하였다.
운정꽃꽂이회 사범들과 함께 SV자원봉사자 등록카드를 받았다. 공식적으로 관련된 서류를 제출하는데 어려움도 있었고 꽃꽂이장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힘든 점도 많았다. 대회 본부가 있는 육상경기장의 회의장소나 각종 라운지, 응접탁자, 10인용탁자 등을 장식하였다. 특히 개막식 때는 사마란치 IOC 위원장을 비롯한 박세직 조직위원장, 노태우 대통령 등 VIP의 축하 코사지를 제작했다. 가장 한국적인 코사지, 우리나라꽃 무궁화를 중심 꽃으로 정했다. 무궁화 생화는 수명이 짧아 사용할 수 없었고 아트 무궁화는 값이 비싸서 매직 무궁화로 제작했다.
무궁화 코사지는 그 때가 처음으로 만들어져 사용된 듯싶다.
9월17일 개회식 아침이다. 작은 추억이지만 잊히지 않는다. 자가용에 홀-짝 운행제가 실시 중이었다. 그때 나의 엘란트라의 끝번화가 홀수였는데도 올림픽조직위원회 등록된 차량으로 반포꽃꽂이학원에서 메인스타디움까지 비상등을 켜고 달릴 때는 정지시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밤새 만든 무궁화 코사지를 접대요원에게 넘겨주고 전날 구성했던 꽃꽂이작품들을 점검하고 화장실로 갔다. 낯은 설었지만 멋진 흑백 옷을 입은 코리아나 여성멤버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회원들은 그들의 싸인을 받기 원했는데, 그걸 막은 일이 지금까지 미안하다.
올림픽 육상경기장 메인스타디움은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환희와 함성으로 터질 듯하였다. 자원봉사자 자리에서 개회식을 맞는 순간은 최대의 행복과 기쁨, 감사의 절정이었다. 그날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까지도 신의 최고의 선물이었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웅장한 메인스타디움, 온 세상에 퍼지는 올림픽 축제 음악, 각종 프로그램과 펄럭이는 세계 여러 나라의 휘황찬란한 국기, 모든 것은 신의 축복 그 전부였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우리나라의 가장 찬란한 한 페이지를 엮어내는 역사의 날로 가슴 벅찬 감격을 어떻게 표현할까.
책상 속에는 아직도 88서울올림픽 기장과 참여증서, 200573 등록카드와 앨범사진이 관심과 사랑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때 받았던 자원봉사자의 티셔츠는 미국에 있는 둘째오빠에게, 스커트는 조카에게, 잠바는 후배에게 여러 가지를 나누어주고 지금도 올림픽 기념 비닐 백 속에는 기념 배지, 대형포스터, 모자, 올림픽게임, 올림픽 주화 등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는 세계 모두가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영원히 함께 잘 사는 융합의 대회로 기억되기 소망한다. 올림픽이 열린 나라 자랑스러운 조국의 큰 행사에 꽃꽂이로 봉사했다는 것은 나의 꽃꽂이 삶에서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