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정여울 지음_<헤세로 가는 길>에서

갑자기여인 2019. 7. 25. 21:03

정여울 지음

《헤세로 가는 길중에서

 

 112/113

 

"작품이 창조될 때, 꿈을 꾸기 시작할 때,

나무를 심을 때, 아기가 태어날 때,

삶은 시작되고 어둠의 시간을 뚫고 나아갈

커다란 틈이 생깁니다"

           《서간집》헤르만 헤세

 

 

내가 헤세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작품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그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을 동경한다.

그는 인생를 즐기는 비밀이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에 달렸음을 일고 있었다

유쾌한 천성,

끝없는 사랑,

그리고 삶을 즐길 줄 아는 낭만과 서정, 그것이야말로

삶을 축복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그는 <정원의 친구들>에서 그 자잘하고 소소한 삶의 기쁨을 노래한다.

사랑할 줄 알고, 노래할

줄 알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고개를

푹숙이고 고민에 빠져 홀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당신을 본다면, 헤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고.

눈부신 하늘, 아름드리나무 잎사귀들, 아장아장 걸어가는 강아지들,

떼지어 노는 아이들, 여인의 머리카락,

그 모든 것을 놓치지 말라고

인생의 아름다움은

그런 자잘한

풍경들에 깃들어 있다고.

 

 

 

301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모방하고 그들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여기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의 귀환》헤르만 헤세

 

 

헤세는 내 마음의 거울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헤세를 읽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 자신'이 보이고 , 

슬픔에 빠져 있을 때 헤세를 읽으면

'슬픔의 동굴에 차라리 계속 숨어 있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이 보인다

헤세는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이 호소하고, 당신이 읽으며, 당신이 사랑하고 또는 비판하는 저 헤세는 당신 자아의 한 모습이라고.

 헤세는 당신 마음의 거울이라고.

헤세에게 무언가를 묻고 싶다면 오히려 당신의 마음에 묻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326/329

 

사랑을 받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것, 그것은 행복이다

             《클라인과 바그너》헤르만 헤세

 

 

세상은 걸어다니는 각도로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다

사람들의 뒷모습 또한 걸어다니는 각도로 바라보았을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걸어다니는 각도는 끊임없이 변하기에

우리는

걷는 동안 무한육면각체로 꿈틀거리는 대상의 변화무쌍함을 느낄 수 있다

내 마음을 바라보는 관점 또는 산책을 하는 동안에

가장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목적 없는 산책, 그저 걷는 것 그 자체로 만족하는

산책은

우리 마음속 영혼의 거울을 활짝 열어젖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