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시도다
이우환화백의 시집 <멈춰서서>_ 산보 1
갑자기여인
2020. 4. 17. 13:48
이우환(李禹煥) 1936년 경남 출생
우리나라의 미술가(화가, 조각가), 주요 작품은 <관계항> 연작, <점에서>, <선에서> 등 외 많은 미술작품과 서적이 있으며
한국 『현대문학』지에서 출간한 그의 《멈춰서서》시집과 《여백의 예술》 등 다수의 문학작품집이 있다.
시집《멈춰서서》는 존재 본연의 모습과 마주치게 하는 이우환의 첫 시집으로 익숙한 언어로 낯섦의 미학을 구현하는 시 83편 실려있슴
산보 1
산보를 나오면 나는 장님이 된다.
다리는 거리의 골목을 걷고 있지만 머리는 보이지 않는 하늘을 난다.
상념의 날개로 나는 하늘은 내면 공간이므로 그곳엔 눈이 필요치 않다.
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하늘은
의식의 절정에서 돌연 외계와 서로 겹칠 때가 있고
그 순간 발길이 멈추고 눈이 트이는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세계와 만난다.
나무가 있고 집이 있고 사람이 있고 공기가 있고…….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날지 않고 다리도 머리도 세계도 모두 함께 거기에 있다.
하지만 왜인지 다음 순간 나는 다시금 장님이 된다.
다리는 멋대로 걷고 머리는 내면의 하늘을 날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념의 날개가 끝내 지쳐버리면
장님인 나는 느닷없이 외계에 부딪쳐 추락사한다.
그러므로 나의 산보는 언제나 결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