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시인 이영춘의 작품집

갑자기여인 2020. 6. 8. 11:16

이영춘 시인의 '공空, 무無, 국밥, 풍장, 타인, 흔적...에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좋아합니다

 

 

*밥솥에서 올라오는 김(煙)

 

 

맏 남동생이 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내가 방문하던 날 그는 얼굴 가득 호박꽃 같은 미소를 달고

 

이 방은 큰애 방, 이 방은 작은애 방, 이 방은 우리 방---,

 

누나도 이 담에 더 늙어서 갈 곳 없으면 우리 집에 와요.

 

방 하나 더 들이면 되니까요

 

갓 깨어난 알 같은 입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향기,

 

확- 내 눈시울을 핥고 지나간다

                                     -《봉평 장날》 에서

 

 

 

*만해마을에서의 하룻 밤1

 

큰 산이 나를 안고 잠을 잤다

나는 밤새 그의 품속에서

하얗게 설레었다

 

몇 년이나 흐르면

그를 닮은 큰 아이 하나

낳을 수 있을까

                      -(《들풀》 에서

 

 

*홀로 사는 집

 


댓돌 위에 신발 한 켤레
그린 듯 누워 있다

지붕 위에서 놀던 햇살이 자박자박 걸어 내려와
몰래 신발을 훔쳐 신어보고 달아난다

조그만 쪽창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에 눈가 있을까?

궁금한 낮달이 기웃거리다 그림자 남기고 돌아간다

쪽마루 밑에 숨어 지켜보던 들고양이, 냉큼
댓돌로 뛰어 올라가 방안을 들여다 본다

거기, 마른 새우 등처럼 웅크린 어머니가
홀로 관棺으로 드는 길,
그 길을 내고 있었다

                                 -《노자의 무덤을 가다》에서

 

 

시인 이영춘선생님은 강원도봉평에서 출생, 오랜 교직 생활퇴임, <노자의 무덤을가다> 십여권권의 시집을 내고 윤동주문학상, 인산문학상,강원도문학상,대한민국향토문학상, 시인들이 뽑은 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