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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마음의 기차역관객과 배우 2024. 7. 9. 14:31
「마음의 기차역」_이병률
기차는 떠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바깥 한데에서 뒹구는 잎사귀들은 헤아릴 것을 찾고
힘이 큰 바람에 기차역의 철골이 진동한다
천사는 다녀가지 않는다
유독 떠나고 돌아오는 인간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어느 먼 데서 가져온 조개껍데기를 탁자에 놓고 보며 재난을 막으려는 것처럼
삼십 촉 알전구 하나씩 가슴에 품고 사는 건 옆에 와 있는 천사를 기다려서다
천사는 떠나지 않는다
천사는 연고(緣故)가 없어서 대리인이 아니라서 천사는 가까이 있다
기차는 떠나지 않는다. 이별(離別)을 찾으러 돌아온다
기차역 형광등이 파르르 떨면서 신발 등에 떨어진 고추장 자국을 비춘다
마음에 지나간 기차 바퀴 자국과 옛 애인에게 겨눈 잘못은 지워지지 않는다
떠나고도 오래 남아 마음의 반찬이 된다
이병률 시집 《눈 사람 여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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