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손월언 시집 <<마르세유에서 기다린다>> 중에서

갑자기여인 2022. 1. 11. 12:18

 

문학동네시인선 044 손월언 시집 《마르세유에서 기다린다》

 

 

<돌>

 

바닷가에서/주워온 돌//바람이 묻었나/불어본다//물소리가 들었나/흔들어본다//파도에 깍인 몸은/한없이 매끄럽고 둥글어//한밤에/볼에 대고 문지른다//책상 위에 올려놓고/돌이 있던 바다르르 생각한다//돌이 있던 바다를 떠올릴뿐/돌도 돌 속에 밤을 말하지 않는다/책상도 무심하다

 

 

<노을 B>

 

얼어 있는 유리창에

크림을 문질러놓은 것 같은 하늘

 

붉은 색은 아주 엷고

옥색은 넓게 퍼졌으며

 

가까운 구름도

붉은 계통을 번갈아 입는다

 

해 따라 바다도 자는데

빛이 남아 있는 동안

두 청년은 지나는 여자를 쳐다보며 낄낄거린다

 

빛이 사라지면

병든 노인의 턱 근처를 떠도는 검불수염 될 것들이

하늘과 땅에 가득하구나

 

 

<노을 A>

 

   오늘 해는 도시의 복잡한 전깃줄처럼 펼쳐진 구름을 거

느렸다

   빛은 부드럽고 하늘은 여러 가지 색깔을 입었다

   붉은 색 사이에 끼쳐 있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옥색을

본다

   갈매기도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노을을 본다

 

   마르세유에는 겨울 한 철 날마다 노을을 보러 오는 사람

이 있었다

    노을이 사위고 나면 갑자기 들리는 파도 소리에 놀라서

    몸 기댄 벤치를 만져보며 밤으로 돌아가던 사람

    높이 떠서 노을을 보던 갈매기가 부러웠던 사람

    겨울 한철, 날마다 바닷가를 거닐며 바다를 가슴에 안았

던 사람이 있었다

 

 

<실눈을 뜨고>

 

꽃무늬 원피스가 하늘거리는 너머

망각을 지각하는 순간에만 돋는 소름 너머

 

실눈을 뜨고 오래 바라보면

절망에서 슬픔으로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 

행복이 보인다

 

                     손월언:1962년 전남 여수 출생, 시집 《오늘도 길에서 날이 저물었다》, 프랑스에서 한글원본과 프랑스어 변역을 함께 수록 출간한 《주머니를 비우다》가 있다. 현재 파리에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