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시인선 044 손월언 시집 《마르세유에서 기다린다》
<돌>
바닷가에서/주워온 돌//바람이 묻었나/불어본다//물소리가 들었나/흔들어본다//파도에 깍인 몸은/한없이 매끄럽고 둥글어//한밤에/볼에 대고 문지른다//책상 위에 올려놓고/돌이 있던 바다르르 생각한다//돌이 있던 바다를 떠올릴뿐/돌도 돌 속에 밤을 말하지 않는다/책상도 무심하다
<노을 B>
얼어 있는 유리창에
크림을 문질러놓은 것 같은 하늘
붉은 색은 아주 엷고
옥색은 넓게 퍼졌으며
가까운 구름도
붉은 계통을 번갈아 입는다
해 따라 바다도 자는데
빛이 남아 있는 동안
두 청년은 지나는 여자를 쳐다보며 낄낄거린다
빛이 사라지면
병든 노인의 턱 근처를 떠도는 검불수염 될 것들이
하늘과 땅에 가득하구나
<노을 A>
오늘 해는 도시의 복잡한 전깃줄처럼 펼쳐진 구름을 거
느렸다
빛은 부드럽고 하늘은 여러 가지 색깔을 입었다
붉은 색 사이에 끼쳐 있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옥색을
본다
갈매기도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노을을 본다
마르세유에는 겨울 한 철 날마다 노을을 보러 오는 사람
이 있었다
노을이 사위고 나면 갑자기 들리는 파도 소리에 놀라서
몸 기댄 벤치를 만져보며 밤으로 돌아가던 사람
높이 떠서 노을을 보던 갈매기가 부러웠던 사람
겨울 한철, 날마다 바닷가를 거닐며 바다를 가슴에 안았
던 사람이 있었다
<실눈을 뜨고>
꽃무늬 원피스가 하늘거리는 너머
망각을 지각하는 순간에만 돋는 소름 너머
실눈을 뜨고 오래 바라보면
절망에서 슬픔으로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
행복이 보인다
손월언:1962년 전남 여수 출생, 시집 《오늘도 길에서 날이 저물었다》, 프랑스에서 한글원본과 프랑스어 변역을 함께 수록 출간한 《주머니를 비우다》가 있다. 현재 파리에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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