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706

종착역/정호승

정호승 시집 《여행》 중에서 「종 착 역」 종착역에 내리면 술집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푸른 술집이 있다 술집의 벽에는 고래 한마리 수평선 위로 치솟아오른다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종착역이 출발역이 되기를 평생 기다린다 나는 가방을 들고 기차에서 내려 술집의 벽에 그려진 향유고래와 술울 마신다 매일 죽는 게 사는 것이라고 필요한 것은 하고 원하는 것은 하지 말라고 고래가 잔을 건널 때마다 술에 취한다 풀잎 끝에 앉아 있어야 아침이슬이 아름답듯이 고래 한마리 수평선 끝으로 치솟아올라야 바다가 아름답듯이 기차도 종착역에 도착해야 아름답다 사람도 종착역에 내려야 아름답다

관객과 배우 2022.08.13 (3)

평범한 수집가의 특별한 초대/최필규

우리 도자기와 목가구 이야기 최필규 지음 《평범한 수집가의 특별한 초대 》 중에서 " . . . . .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던 오래된 사물과 오브제들을 보고 만질 때, 난 신기하게도 전 인류와의 연결성을 느끼게 된다. 나의 존재는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성급한 자동차들의 굉음과 스카이라인을 뒤덮은 빌딩 숲, 개성없이 늘어선 콘크리트 아파트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옛것들은 몇백, 몇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소통이다. 역사는 항상 현재와 과거 사이의 관계를 구성한다. 현재에 대한 두려움은 과거를 신비화할 수 있지만 우리는 과거 속에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미술을 이야기하면서 과거의 문화적 신비화를 끄집어내려는 게 아니다. 과거의 작품들이 불필요하게 아득히 먼 시대에 속..

관객과 배우 2022.08.09 (1)

86세 스승과 68세 제자의 합창

86세 스승과 68세 제자의 옛 반창가 부르기 *목발을 집고 걷는 스승의 발걸음은 폭우 속에서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1975년 2월에 졸업한 배재고교 90회, 3학년2반 제자 16명은, 2022년 7월 23일 분당 미금에서 김종상선생님을 모시고 환담을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 라는 배재고교 교훈과 김종상(서울출생 사대부고 서울사범대 연세대학원 졸업 정명고 교장 퇴임)선생님의 3-2반 담임 때 모습 ↑ * 현재 제자들은 대부분 퇴직하였고 아직도 원자력 연구소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자랑스런 제자도 있습니다 *60년을 훨씬 넘긴 세월 앞에서 50여년의 추억을 훑으며 어색하지만 두터운 손 마주 잡고 열창하는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 . ,' 그 소리는 우렁차면서도 ..

관객과 배우 2022.07.27 (4)

매미 에그머니!

"지난 해는 발가벗은 손님이 배 내밀고 매암매암, 반쯤 수면상태의 주인은 울음소리에 행복했다. 내다보고 들여다보고 눈이 마주치면 울음 뚝 그친다."라고 《꽃, 글, 그 안의 나》에 썼습니다. '여보 당신 보러 매미가 왔어' 올해는 여러 마리가 왔지만 그 울음소리는 한번도 듣질 못했습니다. 매미는 자기만의 집을 짓지 않고 나무에 붙어 이슬과 수액만을 먹으며 살고 있답니다. 그런데 왜 고층으로 날아왔을까, 갑자기 터진 기쁨과 슬픔에 기를 펴지 못하고 우므러드는 노년의 친구가 되려고 왔을까? 망충망에 붙어 있는 매미의 손발 놀림과 배바닥의 모습을 보며 새삼 창조주의 신비와 오묘함을 느낍니다 매미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 스프레이로 찬물을 뿌려주었습니다. 에그머니!

관객과 배우 2022.07.23 (2)

박경리_산다는 것

산다는 것_박경리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

관객과 배우 2022.07.2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