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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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시간은 흐리멍덩, 삶이 후드득, 육개장은관객과 배우 2025. 7. 23. 17:43
「시간은 흐리멍덩」최승자 시간은 흐리멍덩이렇게도 지나가고 저렇게도 지나간다시간은, 고래로부터의 역사적 시간은모두가 구름들일까시간은 흐리멍덩이렇게도 지나가고 저렇게도 지나간다우리의 꿈들도 그렇게 흐리멍덩하게 지나간다「삶이 후드득」 삶이 후드득 떨어진다더욱 빛나지 않는 강물이 되리라 흐린 하늘 너머 부운몽 몇 편이슬며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육개장은」 육개장은 파(派)를 이루지 않아도지식인 冊들은 파를 이룬다잘 흘러가지 않는 돌덩이들을 이룬다文明의 돌 자갈밭을 이룬다 (할 말이 없어돌을 씹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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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훈/아버지의 등관객과 배우 2025. 7. 22. 21:35
「아버지의 등」 정철훈 만취한 아버지가 자정너머휘적휘적 들어서던 소리마룻바닥에 쿵, 하고고목 쓰러지던 소리 숨을 죽이다한참 만에 나가보았다거기 세상을 등지듯 모로 누운아버지의 검은 등짝아버지는 왜 모든 꿈을 꺼버렸을까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검은 등짝은 말이 없고삼십년이 지난 어느 날아버지처럼 휘적휘적 귀가한 나 또한다 큰 자식들에게내 서러운 등짝을 들키고 말았다 슬며시 홑이불을 덮어주고 가는딸년 맴에 일부러 코를 고는데바로 그 손길로 내가 아버지를 묻고나 또한 그렇게 묻힐 것이니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서러운 등짝사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검은 등짝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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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배를 매며관객과 배우 2025. 7. 17. 20:29
「배를 매며 」 장석남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등뒤로 덜썩밧줄이 날아와 나는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 놓고 앉았다가배가 들어와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떠 있는 배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를 울렁이며온종일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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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엮음/시가 나를 안아준다___몇 편관객과 배우 2025. 6. 20. 20:59
《시가 나를 안아준다》 Pillow Poems 잠들기 전 시 한 편, 베갯머리 시 Paul Klee ㅡ Fire at Full Moon 「강에 뜬 달」 강희맹 강에 뜬 달을 지팡이로 툭 치니물결 따라 달 그림자 조각조각 흩어지네.어라, 달이 다 부서져버렸나?팔을 뻗어 달 조각을 만져보려 하였네.물에 비친 달은 본래 비어 있는 달이라우습구나, 너는 지금 헛것을 보는 게야,물결이 잠들면 달은 다시 둥글어지고품었던 네 의심도 절로 사라지리.긴 휘파람 소리 하늘은 아득한데소나무 늙은 등걸 비스듬히 누워 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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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 展' 갑자기와 함께 갑자기관객과 배우 2025. 6. 18. 21:58
"국립현대미술관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2025년 4월 11일부터 7월13일까지 한국최초로 호주 출신 작가론 뮤익의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 1958년 멜버른에서 태어나 1986년부터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론 뮤익은 보편적인 주제를 담은 작품세계를 구축하여현대 인물 조각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그의 작품은 신비로우면서도 극도로 생생하여 현실에 강렬한 존재감을 부여하며,우리가 몸과 시간, 존재와의 관계를 직시하게 유도한다. "(국립현대미술관 팜프렛) ↗작품 는 2016~2017, 유리섬유에 합성 폴리머 페인트, "인간의 두개골은 복잡한 오브제다. 우리가 한눈에 알아보는 강렬한 그래픽 아이콘이다. 친숙하면서도 낯설어 거부감과 매력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주의를 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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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준/미인처럼 잠드는 봄날관객과 배우 2025. 5. 21. 21:08
「 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박 준 믿을 수 있는 나무는 마루가 될 수 있다고 간호조무사 총정리 문제집을 베고 누운 미인이 말했다 마루는 걷고 싶은 결을 가졌고 나는 두세 시간 푹 끓은 백숙 자세로 엎드려 미인을 생각하느라 무릎이 아팠다 어제는 책을 읽다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를 발견했다 대화의 수준을 떨어뜨렸던 어느 오전 같은 사랑이 마룻바닥에 누워 있다 미인은 식당에서 다른 손님을 주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손발이 뜨겁다 미인의 솜털은 어린 별 모양을 하고 나는 손발이 뜨겁다 미인은 밥을 먹다가도 꿈결인 양 씻은 봄날의 하늘로 번지고 나는 손발이 뜨겁다 미인을 생각하다 잠드는 봄날, 설핏 잠이 깰 때마다 나는 몸을 굴려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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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골라 위에 핀 등꽃관객과 배우 2025. 5. 14. 19:24
"멀리서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는 꽃들이 가까이 가면 서로 다른 얼굴과 개성 있는 표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함초롬하게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꽃이 있는가 하면, 당당히 고개를 쳐들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온 세상에 과시하는 듯 대담한 꽃도 있다. 수줍게 손을 내밀 듯이 차분하게 나뭇잎을 피워 올리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자신을 붙잡아주지 않으면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옆에 있는 나무의 줄기를 꽉 붙들며 전투적으로 덩굴을 피워 올리는 나무도 있다. 식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매일 똑같아 보이는 우리네 삶이 문득 부끄러워진다." (정여울 지음 《비로소---내 마음의 적정 온도을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