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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보이는...

"밤의 풍경은 낮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오정희 작가는 말한다. 밤 길을 걷고 있는 나는 아무리 둘러봐도 밤의 풍경이 낮의 풍경과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다. 그냥 밤이면 어둡고 쓸쓸하고 호젓한 느낌뿐, 마주오는 다른 산책자들의 표정도 읽을 수 없다. 한참이나 걸었다. 낮에 보이지 않던 것이 밤에 보이는 것이 있다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쌍 가로등 중에 불이 켜 있지 않은 등 하나, 고장 난 가로등 한 개가 눈에 띈다. 가로등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낮에는 보이지 않고 밤에만 보이는 또다른 것들이 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수필은 시도다 2022.08.27 (5)

흐름의 그림자

뙤약볕을 피해 오리교 아래로 들어서니 아늑하고 고요한 고요가 보인다. 나는 조심조심 나무 의자에 앉았다. 냇물에 비친 조용조용한 그들의 그림자를 본다. 오리교의 속마음, 왜가리의 나른함, 엊그저께 쏟아진 폭우로 떠오다 머문 모래들이 막돌과 한 가족이 된 불편한 사연을. 나는 바람 따라서 고요히 흐르는, 그 흐름의 그림자가 보고 싶어 하늘의 볕을 눈감고 본다.

수필은 시도다 2022.08.26 (3)

종착역/정호승

정호승 시집 《여행》 중에서 「종 착 역」 종착역에 내리면 술집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푸른 술집이 있다 술집의 벽에는 고래 한마리 수평선 위로 치솟아오른다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종착역이 출발역이 되기를 평생 기다린다 나는 가방을 들고 기차에서 내려 술집의 벽에 그려진 향유고래와 술울 마신다 매일 죽는 게 사는 것이라고 필요한 것은 하고 원하는 것은 하지 말라고 고래가 잔을 건널 때마다 술에 취한다 풀잎 끝에 앉아 있어야 아침이슬이 아름답듯이 고래 한마리 수평선 끝으로 치솟아올라야 바다가 아름답듯이 기차도 종착역에 도착해야 아름답다 사람도 종착역에 내려야 아름답다

관객과 배우 2022.08.13 (3)

평범한 수집가의 특별한 초대/최필규

우리 도자기와 목가구 이야기 최필규 지음 《평범한 수집가의 특별한 초대 》 중에서 " . . . . .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던 오래된 사물과 오브제들을 보고 만질 때, 난 신기하게도 전 인류와의 연결성을 느끼게 된다. 나의 존재는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성급한 자동차들의 굉음과 스카이라인을 뒤덮은 빌딩 숲, 개성없이 늘어선 콘크리트 아파트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옛것들은 몇백, 몇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소통이다. 역사는 항상 현재와 과거 사이의 관계를 구성한다. 현재에 대한 두려움은 과거를 신비화할 수 있지만 우리는 과거 속에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미술을 이야기하면서 과거의 문화적 신비화를 끄집어내려는 게 아니다. 과거의 작품들이 불필요하게 아득히 먼 시대에 속..

관객과 배우 2022.08.09 (1)

수다떨다 행복하다

“화려하고 거창한 향연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책을 읽고 수다를 떠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4~5명이 수다를 떨며 먹는 음식이나 커피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 어제는 10여년 넘게 사귀고 있는 제2의 인생에서 만난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사회에서 한 몫을 능히 보내고 화려한 제2전성기에서 활약 중에 있다. 지난 세월 빚 보증으로, 남편의 장기간 투병생활로, 교통사고로 집 한 채 날린 일, 달마다 마이너스 통장의 어려운 생활 등, 오래된 고생담을 몇 년 전에 이미 들어 다 알고 있었지만, 오늘 그 일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대화로 나누었다.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의 수다는 마음의 빗장을 풀어서인지 따스한 감동과 공감을 더 갖게 되었..

수필은 시도다 2022.08.0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