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시도다 161

밤에 보이는...

"밤의 풍경은 낮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오정희 작가는 말한다. 밤 길을 걷고 있는 나는 아무리 둘러봐도 밤의 풍경이 낮의 풍경과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다. 그냥 밤이면 어둡고 쓸쓸하고 호젓한 느낌뿐, 마주오는 다른 산책자들의 표정도 읽을 수 없다. 한참이나 걸었다. 낮에 보이지 않던 것이 밤에 보이는 것이 있다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쌍 가로등 중에 불이 켜 있지 않은 등 하나, 고장 난 가로등 한 개가 눈에 띈다. 가로등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낮에는 보이지 않고 밤에만 보이는 또다른 것들이 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수필은 시도다 2022.08.27 (5)

흐름의 그림자

뙤약볕을 피해 오리교 아래로 들어서니 아늑하고 고요한 고요가 보인다. 나는 조심조심 나무 의자에 앉았다. 냇물에 비친 조용조용한 그들의 그림자를 본다. 오리교의 속마음, 왜가리의 나른함, 엊그저께 쏟아진 폭우로 떠오다 머문 모래들이 막돌과 한 가족이 된 불편한 사연을. 나는 바람 따라서 고요히 흐르는, 그 흐름의 그림자가 보고 싶어 하늘의 볕을 눈감고 본다.

수필은 시도다 2022.08.26 (3)

수다떨다 행복하다

“화려하고 거창한 향연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책을 읽고 수다를 떠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4~5명이 수다를 떨며 먹는 음식이나 커피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 어제는 10여년 넘게 사귀고 있는 제2의 인생에서 만난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사회에서 한 몫을 능히 보내고 화려한 제2전성기에서 활약 중에 있다. 지난 세월 빚 보증으로, 남편의 장기간 투병생활로, 교통사고로 집 한 채 날린 일, 달마다 마이너스 통장의 어려운 생활 등, 오래된 고생담을 몇 년 전에 이미 들어 다 알고 있었지만, 오늘 그 일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대화로 나누었다.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의 수다는 마음의 빗장을 풀어서인지 따스한 감동과 공감을 더 갖게 되었..

수필은 시도다 2022.08.04 (9)

가는 빛, 너그러이

저녁 설거지하기 싫어 뭉그적거리다가 창가를 내다봤다. 사방이 불그름하다. 앞쪽 베란다로 왔다. 노을이 보랏빛이다. 옷차림은 나 몰라라 그냥 운동화를 신고 내려갔다. 자동차 전신에, 나뭇잎, 땅바닥이 온통 보랏빛이다. 트럭에 쌓여 있는 복숭아도 보랏빛, 탄천으로 내려가다 돌계단 중간에서 한 컷, 맨아래로 내려가 한 컷을 찍는데, 빨간 빛으로 반짝이던 강물이 어두워진다. 다시 계단 위로 오르다가 중간지점에서 한 컷. 계단 맨 위로 오르니 노을은 사라지고 있었다. 순간이다. 그래, 삶이란 노을인 것을, 왜 오늘 하루도 실망하고 후회하고 아파했을까? 그냥 지나가면 됐을 것을. 시인 딜런 M. 토머스는 “하루가 저물 때 노년은 불타며 아우성쳐야 합니다’ 라고 했다. 현실은 그저 수용하고 잠잠하라고만 한다. 가는 ..

수필은 시도다 2022.07.30 (7)

쌍둥이, 축복둥이

호호. . . 쌍둥이 녀석들 참 예뻐요. 큰아이 가졌을 때, 미혼인 시누이는 내 배를 보면서 ' 어떻게 해 언니, 쌍둥이 낳겠어' 라고 경망스럽게 방정을 떨었습니다. 걱정과 불안을 느낀 나는 친정 올케에게 일렀습니다. 올케 언니는 "뭐라고? 자기나 쌍둥이 낳지" 하며 나에게 안심하라던 말이 생각납니다. 50 여년 전의 일입니다. 요즘 쌍둥이 세쌍둥이 다둥이의 출생은 곧 축복, 축복둥이입니다. 앞으로 50년 후는 어떻게 변할까요? 욕심을 접어둡니다.

수필은 시도다 2022.07.19 (9)

보도블록에 엎드려서

보도블록에 엎드려서 산책은 홀로 걷는 것이 좋지만 가끔은 남편과 함께 하는 날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 날이 바로 오늘 인 것 같습니다. 한참이나 걷다가 잠깐 쉬는 곳이 마침 운동기구도 있는 호젓한 곳이었습니다. 벤치에 앉아 아픈 발바닥을 주무르기 위해 운동화를 벗는데, 누워있는 듯한 노란 꽃이 가련하게 흔들거렸습니다. 몸을 낮춰 벤치 아래를 살펴보니 보도블록 사이에 작은 것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머! 너희들은 누구냐? 가만히 그들과 눈을 맞추는 순간 가슴이 뛰었습니다. 예쁜 생명들, 운동화 양쪽을 다 벗고 무릎을 끓고 가슴을 땅에 대고 얼굴 한쪽도 땅에 댔습니다. 따뜻?했습니다. 방향이 잡히지 않아서 스마트폰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불안정한 자세를 고쳐 다시 촬영하려고 했더니 개미 한 마리가..

수필은 시도다 2022.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