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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의 힘/정호승관객과 배우 2024. 7. 22. 20:24
「짜장면의 힘」 정호승
짜장면은 힘이 있다
아버지의 힘이다
짜장면은 장딴지에 꿈틀대던 아버지의 젊은 핏줄이다
핏줄의 힘이다
나는 짜장면을 먹을 때마다 젊어진다
다시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 짜장면을 먹고 길을 달린다
아버지가 짜장면을 사주실 때마다 힘차게 더 빨리 달린다
그러나 오늘은 처음으로 짜장면의 힘에 대해 슬퍼해보였다
아버지의 짜장면을 먹던 내가 오히려
늙은 아버지가 되었다
밤하늘은 짜장면처럼 캄캄하다
별들이 민들레 씨앗처럼 흩어진다
서울에 사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짜장면을 먹다가
손수건을 꺼내 밤하늘의 눈물을 닦아준다
짜장면은 힘이 세다
짜장면을 먹으며 가난도 함께 나누면 가난이 아니다
죽기 전에 맛있는 짜장면을 한 그릇 먹고 싶어 하셨던 아버지처럼
나도 죽기 전에 짜장면을 먹고 당신을 기다린다
정호승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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