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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선 스타일_장영희수필은 시도다 2020. 4. 2. 00:30
"이 글은 김점선 씨를 아는 지인들이 그녀가 각기 지정해 준 말 그림을 보고 단상을 쓸 때 적었던 글이다. 이 짧은 글을 내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는 故 김점선 씨에게 바친다."- 장영희
↓ 그림 김점선 | 장영희에게
김점선스타일/장영희
초록색 풀밭 위의 빨간 말. 무얼 보았는지 반가운 마음에 그쪽을 향해 뛰어가려고 엉덩이를 쭉 빼고 앞다리에 힘을 불끈 준다. 갈기를 휘날리며 코를 벌름벌름, 표정은 무언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금방이라도 우하하 폭소를 터뜨릴 것만 같다. 아무리 멀리, 높이 뛰어도 걸릴 것 하나 없는 완벽한 자유를 향해 뛰어간다. 이에 장단 맞추듯, 초원의 풀도 위로 쭉쭉 뻗어 새파란 하늘까지 닿았다. 그래서 하늘 몇 조각이 후두둑 풀밭에 떨어졌다.
김점선 씨가 이 초록빛 풀밭의 행복한 말을 장영희의 말로 지정한 이유는 뭘까? 황우석의 줄기세포 꿈은 멀리 가 버렸지만 금방이라도 뒷다리를 쭉 펴고 벌떡 일어날 듯한 저 빨간 말의 힘을 소망했을까. 아니면 네 평짜리 비좁고 복잡한 연구실에 갇혀 이런저런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사는 내게 저 넓은 초원의 자유를 선사하고 싶었을까. 아니, 그보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바로 저 표정,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듯한 표정 때문에 이 예쁜 빨간 말이 내 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 그림 정일
나는 김점선 씨 옆에 있으면 늘 그렇게 웃기 때문이다. 사는 게 재미있어 못 견디겠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평화와 행복을 주체할 수 없어서 끝없이 웃는다. 그녀의 순발력과 기발함, 그녀의 활기가 지리멸렬한 삶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기 때문이다.
김점선 씨는 이제껏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겉모습은 터프하지만 속을 말랑말랑하고 여리다. 겉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순하고 착하다. 겉으로는 짐짓 무관심, 모르는 척하지만, 그녀의 머리는 비상하여 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해박하다. 무엇보다, 겉으로는 엄숙해 보이지만 그녀는 끝없이 유쾌, 통쾌, 명쾌하다.
↓ 그림 정일
김. 점. 선. 한마디로 그녀는 그녀가 그려 내는 그림처럼 내 눈앞에 실체로 존재하는 아름다운 환상이다. 이름만 들어도 저 빨간 말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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