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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식당」
희망식당의 물렁물렁한 순두부는 힘이다
희망식당의 가는 콩나물은 길이다
희망식당에 아침이 오면
길 잃은 개미들이 찾아와 밥을 먹는다
배고픈 거미들도 데리고 와 밥을 먹인다
여름이면 우박이 콩자반이 되어주고
햇살이 무채가 되어주고
바람이 가끔 찾아와 설거지를 해 주고 가는
희망식당에서 밥그릇이 희망이다
숟가락도 젓가락도 희망의 손이다
희망식당에서는 아무도 작별인사를 하지 않는다
밥을 다 먹고
종이컵에 자판기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다시 만날 아침을 밝게 기약하면
바람이 목민심서의 책장을 넘기며 웃는다
-정호승 시집 《여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