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희망식당_정호승

갑자기여인 2020. 8. 7. 15:49

「희망식당」

 

희망식당의 물렁물렁한 순두부는 힘이다

희망식당의 가는 콩나물은 길이다

희망식당에 아침이 오면

길 잃은 개미들이 찾아와 밥을 먹는다

배고픈 거미들도 데리고 와 밥을 먹인다

여름이면 우박이 콩자반이 되어주고

햇살이 무채가 되어주고

바람이 가끔 찾아와 설거지를 해 주고 가는

희망식당에서 밥그릇이 희망이다

숟가락도 젓가락도 희망의 손이다

희망식당에서는 아무도 작별인사를 하지 않는다

밥을 다 먹고

종이컵에 자판기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다시 만날 아침을 밝게 기약하면

바람이 목민심서의 책장을 넘기며 웃는다

 

                                       -정호승 시집 《여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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