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짝 붙어서다/김사인(金思寅)관객과 배우 2012. 11. 11. 20:27
골목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헐렁한 몸빼를 입은 할머니가 폐지를 줍고 있는데, 승용차가 들어섰습니다.
빵빵 경적이라도 요란하게 울려 대지 않을까 지레 놀란 할머니가 벽에 바짝 붙어 섭니다.
자동차의 눈에는 할머니가 한낱 폐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이처럼 할머니의 삶을 구겼다 펴는 승용차의 바퀴와,
유일한 혈육이 되어 할머니의 발꿈치를 따라가는 밀차의 바퀴 중 우리는
어떤 것에 더 가까울까요?
바짝 붙어서다
김사인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빼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힘겹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벽에 바짝 붙어 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저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 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밤에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서 있을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방 한 구석 힘주어 꼭 짜놓은 걸레를 생각하면
'관객과 배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편지- 달의 여신께 (0) 2012.11.15 가을 편지- 나서는 버릇 (0) 2012.11.14 가을을 보내며/이향숙 (0) 2012.11.05 가을의 편지-사라에게 (0) 2012.11.01 늦가을의 추위 (0) 2012.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