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랩] 다람쥐와 까치/이원화(한결문학회)관객과 배우 2013. 7. 19. 13:58
다람쥐와 까치
이원화
현관을 나섰다. 늘 비어 있던 현관에 아들네 식구들이 벗어 놓은 신발들이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처럼 정겹다. 집 가까이 탄천이 있어 버릇처럼 산책 한다. 오리교와 구미교가 탄천을 지키듯 내려다보고 냇가에 발을 담고 있는 능수버들이 제 멋에 겨워 축 늘어져 있다. 지난 봄 함박 꽃 같은 꽃잎으로 야외 결혼식장 꽃길을 꾸민 듯 화려했던 왕벚꽃나무들이 어느새 줄지어 파란 숲길을 이루었다.
쉿!
다람쥐 한 마리가 왕벚나무 줄기를 타고 내려온다.
나도 모르게 환한 미소 지으며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가지고 소풍을 간다." 가만히 노래를 불러본다. 다람쥐는 나를 보지 못했나보다. 겁 없이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며칠을 굶었는지 먹느라 정신없다. 무얼 먹고 있을까 궁금했다. 벚나무 아래에 떨어진 버찌 열매를 먹고 있다. 검게 익은지 벌써 오래 된 마른 열매들이다. "다람쥐야 다람쥐야 재주나 한번 넘으렴 팔딱 팔딱 팔딱……", 나의 부동자세를 보던 젊은이도 조심스런 몸짓으로 지나간다.
자세히 보니 다람쥐는 어린 다람쥐였다. 다람쥐는 가을에 도토리를 모아 여기저기 숨겨두었다가 겨울이 되면 그것을 먹고 지내는 줄로만 알았는데, 혹시 숨겨놓은 장소를 깜박 잊었을까. 초여름 새벽부터 먹이 찾아 나선 것이 마치 심봉사의 딸 청이 같아 불쌍해 보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까치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깍깍 소리친다. 놀란 다람쥐는 잽싸게 굵은 나무줄기를 타고 높이 오른다. 제 몸길이만한 두툼한 꼬리로 균형 잡듯 흔들며 다른 가지로 옮겨간다.
그때 까치 한 마리가 또 날아오더니 양쪽에서 위협적으로 소리 지른다. 까치는 우리에게 반가운 새 소식을 전해주는 흑백의 멋쟁이 신사인줄로만 알았는데 사납기 그지없음을 느끼게 한다. 겁에 질린 다람쥐는 어느 쪽으로 도망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떨고 있는 듯했다. 옆에 있는 나무로 옮기려 해도 간격이 넓어 떨어질 것만 같고 그렇다고 땅으로 내려올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 되었다. 까치 두 마리는 자기영역에 이방인이 왔다고 계속 몰아쳐 다가오고. 떨며 부동자세만을 보이던 다람쥐는 드디어 자신의 최후가 될지 모를 결단을 내렸다. 건너편에 있는 그늘 집 지붕으로 힘껏 뛰었다.
그는 슬래브 지붕이 땅으로 급하강하게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늘 집 지붕 한 쪽에 늘어져 있던 큰 느티나무 곁가지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까치들은 계속 날카로운 부리와 꼬리를 곧추 세우며 양면작전을 펼쳐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얏! 나도 모르게 소릴 쳤다.
출처 : 한결문학회글쓴이 : 갑자기 원글보기메모 :'관객과 배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견딜 만큼/정란희 (0) 2013.08.02 시인 예수/정호승 (0) 2013.07.30 536-811'땅끝 정상에서 나에게 띄우는 편지' (0) 2013.07.16 [스크랩] 새벽 서울에서 (0) 2013.07.12 [스크랩] 밑천 (0) 2013.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