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하얀 눈이 내리면 안팎이 성스러워지는 듯 싶은 데, 금년은 황사와 미세먼지로 혼탁하여 안타깝다. 음산하게 아픈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죽전역에서 출발하여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빽을 열어 읽을 꺼리를 찾았으나 없다. 지하철 안에는 거의 전부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아저씨, 아줌마, 학생, 어른 모두가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 얼마전 일본 여행했을 때 그들은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그때였다. 미금역에서 청년이 큰가방을 끌며 들어왔다,
"수능 논술 취업 시험을 대비하는 고사성어책이 나왔다"고 소개한다. '그래, 어떤 것일까?', 그 청년은 "단돈 천원입니다" 한다. 어른 손바닥 크기의 문고판 <이미지와 함께 보는 고사성어>는 가볍고 활자는 커서 좋을 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아우르는 지혜서로 지하철용으로 퍽 좋은 책이다. 오늘은 횡재한 날 같아 무릎도 아프질 않았다.
추기급인(推己及人)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제나라에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대설이 내렸다. 제경공은 따뜻한 방 안에서 여우털로 만든 옷을 입고 설경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다. 그는 눈이 계속 내리면 세상이 더욱 깨끗하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때 안자가 경공의 곁으로 들어와 창문 밖 가득 쌓인 눈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경공은 안자 역시 함박눈에 흥취를 느낀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올해 날씨는 이상하군, 사흘이나 눈이 내려 땅을 뒤덮었건만 봄날처럼 조금도 춥지 않군."
안자는 경공의 여우털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정말로 날씨가 춥지 않은지 되물었다.
경공은 안자의 질문의 의미를 되새겨 보지도 않고 웃음을 짓기만 했다. 그러자 안자는 안색을 바꾸어 이렇게 말했다.
"옛날의 현명한 군주들은 자기가 배불리 먹으면 누군가가 굶주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자기가 따뜻한 옷을 입으면 누군가가 얼어 죽지않을까를 걱정했으며, 자기 몸이 편안하면 누군가가 피로해하지 않을까 염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공께서는 다른 사람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군요."
안자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이 말에 경공은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서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보는 지혜가 없었던 것이다.
'관객과 배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해인 수녀님 시 모음_1월의 시 (0) 2014.01.23 [스크랩] <한국의 명수필> 읽으면서 (0) 2014.01.22 행복한 겨울 (0) 2014.01.15 마음의 눈물/김순덕 (0) 2014.01.10 감과 직박구리/이원화 (0) 2013.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