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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압정/이문재관객과 배우 2014. 11. 25. 01:52
민들레 압정
이문재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지난 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민들레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지난 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 왔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 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 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관객과 배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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