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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품 요리로서의 시_나태주수필은 시도다 2019. 3. 28. 21:56
『혼자서도 꽃인 너에게』
나태주 산문집
단품 요리로서의 시/나태주
혜리야, 그동안 내가 문학 강연을 다니며 시에 대해서 새롭게 해 본 생각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첫 번째 생각은 '시는 단품 요리다.'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가끔 음식점에 가서 먹어 보기도 하지만 한정식은 여러가지 음식을 구색 맞춰 늘어놓은 식단이다. 하지만 한정식은 딱히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 식사를 하고 나서도 별로 느낌이 남지도 않는다.
그러나 단품 요리는 먹을 때도 그렇지만 먹고 나서도 그 소감이 뚜렷하다. 우리들의 시도 한정식 요리보다는 단품 요리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정식 같은 시를 내놓을 때 독자들은 그 시인을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저것 늘어놓으며 조금은 현란하게, 여러가지 주제로 시를 쓰게 되면 독자들은 어떤 것이 그 시인의 특징인지를 모를 것이기에 그렇다.
문제는 질 높은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 앞에 내놓으려는 주인의 노력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애쓰고 노력할 때 언젠가는 손님들이 그 주인의 마음도 알게 될 것이고 자주 찾는 음식점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인도 평생을 두고 한 가지 주제나 소재만을 가지고 열심히 쓰고 질 높은 시를 내놓으려고 애를 쓸 때 그 시인은 독자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래야만 독자들의 마음 바다에 살아남는 시와 시인이 될 것이다.
어쩌면 시인은 민족의 언어 가운데 일반명사(보통명사) 한두 개를 가져다가 시로 써서 자기의 언어로 만들고 고유명사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사람인 지도 모른다. 한번 유명하다는 시인의 이름을 떠올리고 그 시인이 쓴 시를 한두 편씩 떠올려 보라. 만약에 선뜻 시의 제목이 떠오르면 그 시인은 성공한 시인이고 시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시인은 아직은 성공하지 못한 시인이다.
이것은 참으로 묘한 문제이고 시인들에겐 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시인은 자기의 모국어 한두 개를 가지고 시를 써서 그 시로 하여 일반명사를 고유명사가 되도록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될 때 시인은 죽어도 죽지 않는 목숨이 된다. 평생을 두고 시를 쓰겠다는 시인들은 자기가 어떤 명사 하나를 가져다가 일반명사에서 고유명사오 바꾸어 다시 민족의 언어로 돌려보냈는 지 자신의 작품을 돌아보고 살펴볼 일이다.
우리 시 문화 가운데 굵은 자국을 남긴 시인들 이름과 그들 시인이 시로써 일반명사를 고유명사로 바꾼 예를 여기에 적어 보고자 한다. 혜리야, 네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 한번 비교해 보기 바란다.
*한용운-님 *김소월-진달래/초혼 *이육사-광야/청포도 *이상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김영랑-모란 *정지용-향수/호수
*신석정-촛불 *서정주-국화꽃/누님 *유치환-행복/깃발 *박목월-나그네/청노루 *조지훈-승무 *박두진- 해 *윤동주-별/서시
*김춘수-꽃 *이형기-낙화 *박재삼-(울음이 타는 )가을 강 *박용래-저녁눈 *천상병-귀천 *신동엽-금강/껍데기 *신경림-농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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