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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의 사는 법_박경리
    관객과 배우 2020. 9. 22. 15:15

    박경리(1926~2008), 금관문화훈장(1등급)수상,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 제6회호암예술상 외 다수

                               토지ㅣ불신시대ㅣ암흑시대ㅣ표류도 ㅣ김약국의 딸들 외 다수

     

     

    「어머니의 사는 법」

     

     

    내 것 아니면 길가 개똥같이 보인다/단단한 땅에 물 고이고

    오늘 먹으면 내일 걱정을 해야 한다/항상 하던 어머니의 말이다

    또 한마디 하는 말이 있었다/자식을 앞세우고 가면 배가 고파도

    돈을 지니고 가면 배가 안고프다

     

    그 말 그대로 살다 간 어머니/남의 것 탐내거나 부러워한 적 없었고

    쉬어서 못 먹는 밥도 씻어서 끓여 먹고/가을에는 일 년치의 땔감 양식을

    장만하지 않고는 잠이 안 오는 성미/하여 태평양전쟁 말기, 육이오전쟁 때도

    우리는 죽 아닌 밥을 먹었다/그리고 돈은 어머니의 신앙이었다

     

     

    장무새는 충분하게, 밑반찬은 빠짐없이/늘 준비가 돼 있는 상태였기에                   

    시장 출입은 한 달에 두세 번 할까 말까/장에 갈 때는 장바구니를 들었지만

    평소에는/쓸 만큼 손수건에 돈을 싸서/어머니는 그것을 꽉 쥐고 다녔다

    필요 없는 것은 사지 않았으며/다만 옹기전 앞을 지날 때는

    예쁘고 야문 단지를 골라 들고/한 참을 살피는데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 듯/값을 지불하는 것이었다

     

    장독대 항아리는 윤이 나서 반짝거렸다/방안의 이불장에도 비단 이불이 그득했다

    이불의 몇 채는/내 혼수로 준비한 것이었지만/어머니는 말하기를

    여자란 음식은 아무거나 먹어도/잠자리는 가려서 자야 한다

     

    그래서 이불 호사가 그리 대단했을까/깊은 겨울에도 우리 모녀는

    온 집 둘레에 장작을 쌓아 놓고도/불 안 땐 냉방에서 잠을 잤다

    이불 요를 두 채씩이나 깔고 덮고 잤다/사막 같은 집 안이었다

    장독대와 장롱 속의 비단옷/이불장의 비단 이불 그것 말고는

    색채도 모양도 없는 살풍경이었다/부엌에는 막사발 몇 개

    겨울에는 놋그릇이었지만/소반 물독 가마솥 두 개

    그 외에 기억에는 남는 세간이 없다/길이 잘 난 가마솥은

    메주콩을 삶는다든지 간장을 대린다든지/빨래를 삶고 손님이 온다거나

    그럴 때만 사용했고/대개는 작은 법랑 남비에/장작을 성냔개비처럼

    칼로 잘게 쪼개어 밥을 지었다/평소에는 밑반찬 한두 가지

    된장국 김치가 고작인 밥상/더 이상/절약할래야 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

     

     돈을 아끼지 않을 때가 있었다/절에 시주하는 일/길 가다가

    다리 놓는 공사라도 마주치게 되면/상당한 금액을 희사했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닐 다리인지라/시주는 큰 공덕이 되는 것은 물론

    죽어서 삼도천 건널 때도/도움을 받는다고 믿는 까닭이다

    어머니는/남과 나누어 먹는 데도/인색한 편은 아니었다

    손이 작으면 못쓴다 그러면서/이웃 간에 고사떡도 뜸뿍 담아 돌렸고

    여름에는 우무콩국을 만들어/이웃과 나누어 먹었다/언제였던가

    박재삼 시인이 세상 떠나기 전에/왕십린가 청량리, 기억이 확실치 않으나

    아프다는 소식 듣고/찾아간 일이 있었다/이런저런 얘기 끝에

    박 시인 댁네가/결혼해서 처음 서울 왔을 때/할머니가/된장 고추장 챙겨 주더라는 말을 하며/이제는 세상에 없는 어머니를/회상하는 것이었다

    내게는 희미한 기억이었지만/하기는 정릉 살 때/산동네 판잣집 사람들에게

    된장 간장을 곧잘 퍼 주었고/일거리가 없는 힘든 겨울철/출산했다는 소식 들으면

    연탄과 미역을 갖다 주기도 했다/내가 어릴 적에도 배고픈 사람/데려다 밥 먹여 보내는 일도/가끔 있었다/그러나 어머니의 그 같은 자비의 행위가/내게는 정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불교적 계율을 지켰다 해야 할지

    심하게는 형시적이었다 할 수도 있고/감동이 없는 성격 탓이었을까/다정하게 말할 줄 몰라 그랬는지

     

    어머니는 받아야 할 것은/반드시 받아 냈고/줄 것은 또 어김없이 돌려주었다/물건을 사거나 돈거래 때/셈이 잘못되어 돈이 남으면

    일부러 찾아가서 돌려주었다/육이오 전쟁이 생각난다/어떻게 우리가 살아남았는지/기적 같기도 하다/어머니의 깐깐한 그 성미 탓으로

    우리 식구가 사지에서 구원된 일/아득한 옛날인데 어제 일 같기도 하고/당시 우리는 흑석동에 살았다/한강 다리가 끊어지던 밤

    날이 새자 어머니는 옆집 가게에서/피난에 필요한 부식 같은 것을 사고/그간에 밀린 외상값도 갚고/관악산을 향해 우리는 떠났다

    이내 인민군은 마을을 점령했고/남진을 계속하는 상황/우리는 피난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세상은 완전히 바뀌어져 있었다

    반동을 색출하는 무시무시한 분위기가/마을을 내리누리고

    옆집 가게는 반장 집이기도 했기에/아저씨는 진작부터 피신했으며

    나머지 식구들은/무덥고 긴 여름 동안/수월찮아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가을바람과 함께/사태는 반전했다/국군의 입성은

    또 한 번 세상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빨갱이는 씨를 말려야 한다는

    구호가 충천했고/사람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부역자들을 잡아서 국군에게 넘겼다

    무리 중에 가장 과격하고 앞장선 사람은/반장네 식구들이었다

    우리 사정은 그들과 반대였다/직장으로 내려간 남편은/좌익이라 하여 인천서 체포되었고/빨갱이 가족인 우리가/무사하지 못할 것은/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집은 적산으로 지목되어/가제도구 일체를 봉인했고/국군이 총대를 디밀고

    집을 비우라 했다/속절없이 거리로 내쫓길 판국에/반장네 식구들이 달려왔다

    이 집은 확실치 않으니 다른 데로 가자/하여 우리는 위기를 모면했다

    좌익에 대한 증오심이/골수에 사무친 반장네 식구들/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보호해

    주었다/난리가 나니까 모두 달겨들어/가게 물건을 약탈해 가는데

    외상값 갚고 피난 간 사람은/영주네 밖에 없었다 하며

    시민증도 내어 주었고/일사후퇴 때에는/남편이 어느 곳으로 이감될지 몰라

    우리는 피난길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는데/반장네는 전화 속에 남은 우리를 위해

    많은 식량을 건네주고 떠났다/세월이 너무나 많이 흘러/지금은 그들 대부분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지만/생각이 나곤한다/각기 다르게.

    그러나 모두 한길를 가는/목마른 삶의 모습을/생각하는 밤이 그 얼마인가

     

    나는 어머니가 목청을 돋우어/남과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삐거덕거리기 마련인/기봉이네하고도 다투는 것을 못보았다

    사람들이 남의 험담을 하면/세상에 숭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했고

    말소드레기 일으키는 것들/상종 안한다는말도 했다

    말소드레기란/말을 옮겨서 분란을 일으킨다는 뜻인데

    어머니는 남의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고/호기심도 없었다

    밥 먹고 할 일 없는 것들,/내 살기도 바쁜데/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그럴 새가 어디 있느냐/여하튼 어머니는 매사에 소극적이며

    남에게나 자신에게도/과소평가를 원칙으로 하여/남을 치켜세운다거나

    자기 자랑하는 일이 없었다/꿈을 꾸는 사람에게/일이란 돼 봐야 안다는 말로

    번번이 찬물을 끼얹었으며/나 역시/어머니의 방식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남과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아이로/아니 남보다 뒤쳐지는 아이로

    유년기의 나의 감성은/벌판에 홀로 서 있는 새와 같았다

    (중략)

    쓸쓸한 장례였다/어머니를 화장하고 돌아온 날, 그 밤

    딸과 손주는 원주 시가로 내려가고/아무도 없이 혼자 남은 방

    외등을 켜 놓고/나는 뜰에서 돌을 깔았다/경국사 뒷산이

    씻꺼멓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이따끔 어머니 방 쪽에서

    소독 냄새가 풍겨왔다/그 냄새는

    꿈같은 하루/어머니의 죽음을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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