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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개비가 별의 귀에 대고 한 말/류시화
    관객과 배우 2023. 3. 17. 20:51

    <필사>

     

    「달개비가 별의 귀에 대고 한 말」

                                                       류시화

     

    오늘 나는 죽음에 대해 회의를 갖는다

    이 달개비, 허락 없이 생각의 경계를 넘어와 지난해

    두세 포기였는데 올해

    마당 한 귀퉁이를 다 차지했다

    뽑아서 아무 데나 던져도 흙 근처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는 이

    한해살이풀의 복원력

    단순히 죽음과 소멸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연약한 풀이 가진

    세상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

    그것이 나를 긍정론자이게 만든다

    물결 모양으로 퍼져 가는 유연함

    한쪽이 막히면 다른 쪽 빛을 찾아 나가는 본능적 지성

    다른 꽃들에 변두리로 밀리면서도 그 자신은

    중심에 서 있는 존재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불에 덴 것처럼 놀라는 인간들과는 사뭇 다르다

    나는 장미가 이 닭의장풀보다 귀하다는 것을 안다

    신의 눈에는 그 반대일 수 있다는 것도

    달개비의 여윈 손목을 잡고 해마다

    두꺼비와 가시연꽃과 붉은 가슴 도요새가 나온다

    무당벌레와 흰올빼미도 나온다

    오늘 나는 달개비에 대해 쓴다

    묶인 곳 없는 영혼에 대해

    사물들은 저마다 시인을 통해 말하고 싶어 한다

    나비가 태어나는 곳이나 생각의 틈새에서 자라는

    이 마디풀에게서 배울 점은 다름 아닌

    신비에 무릎 끓을 필요

    신비에 고개 숙일 필요

                        

    '왕벚나무에 뿌리를 내린 달개비'  2020년 갑자기가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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