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구상나무와 무존재"

갑자기여인 2009. 12. 24. 17:53

 

구상나무와 무존재

 

  구상나무에 대한 나의 생각 그 오해를 풀고 싶었다.

                              

 시월 중순 어느 꽃꽂이 데몬스트레이션 모임에서 새 잎이 돋아난 제법 굵은 가지를 주지로 구성한 작품을 보고 그 이름을 물었더니 '구상나무'라고 한다. 잘못 들은 것 같아서 다시 되물었다. 발표자는 전날 뒷산에서 잘라온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가을철에 구상나무의 새잎이 돋아났을까, 정말 이상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구상나무는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고목과 같은 마른가지 형태의 고사목으로 알았는데. 아주 평범하게 많이 있다니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잘못 알고 있었을까.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어디 하나 둘일까.

 덕유산 정상에 있는 구상나무 안내문에 아래와같이 쓰여 있다.

 

 구상나무 원산지는 제주도 한라산, 분포는한라산,지리산, 덕유산의 해발 500m-2,000m에서 자생, 수령은 약130-180년 정도, 용도는 관상용 가구재 건축재 특 성은 망개나무, 미선나무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종으로서 빙하기 때 한반도 끝 제주도까지 그 세력을 확장했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2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한반도 내의 기온이 상승하자 대부분 자연 도태되고 한라산 덕유산 정상 주위 에서만 살아남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희귀 수목이다.(이하생략)

 

 얼마전 모조간신문에 게제된 내용으로  ' 환경부는 올해 발표한 국가장기생태연구중간 조사결과를 통해 봄에 나오는 소나무 새순이 가을에 나오는 이상 현상이 서울 도심 소나무 72%에서 발견되는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우리 고유종인 주목과 구상나무 등은 온도에 민감하다보니 고산지대로 서식지가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어렸을 때 만난 동창들과 함께 오랜만에 전북 무주군에 있는 국립공원으로 여행을 시작하였다. 배꽃시절로 돌아간듯 마음과 몸이 뛰는 듯 즐거웠다. 여행지에는 관심없이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주고받으며 이야기 올림픽을 개최한것 같았다. 안내인의 마이크 소리가 났다. 그제서야 우리들은 밖을 내다보았다.

 적상산 오르는 도로 양편에는 숨을 못 쉴 정도로 황금색 은행나무 아래 단풍나무가 불에 타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정상에 올라 잠시 심호흡을 하고 바로 다시 내려오니 2차선 도로가 핏빛으로 잠기어 있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덕유산으로 옮겨갔다. 곤돌라를 타고 올랐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덕유산으로 옮겨갔다. 곤돌라를 타고 올랐다. 곤돌라의 안팎은 온통 조물주의 미술시간이다. 붉은 물감을 묻힌 붓으로 사방을 칠한다. 동창들의 마음과 몸에도 숨어 들어 적색인종으로 바뀌는듯하다.  한참 올랐다. 드디어 종착역에 도착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없이 높아보이던 하늘과 맞닿아 있는 덕유산 정상이 바로 눈앞에 있다. 몇 걸음 걸었다. 바로 왼쪽 편에 나무가 아닌 나무 두 그루가 번쩍이며 서 있다.

 구상나무다.

 고사목이다.

 왼편에 자리잡고 있는 고사목은 큰 옛 절의 뒷기둥 같은 굵은 두 줄기가 경사지어 있었다. 한줄기는 위로 향하다가 벼락 맞은 듯 잘려 나갔고 또 한 줄기는 강한 태양빛에 쫓겨 낮게 흘러내리면서 아래 마을을 향해 손짓하는 모습이다. 두 나무통의 모습에는 단조로움을 피해서 균형을 깨뜨린 것 같이 충격적인 선과 공간으로 교묘하게 맞추어 서있다. 은근하면서도 적극적이다. 또 그 오른편에 있는 고사목은 분명히 한 그루의 나무인데 둘로 갈라져서 두 개의 나무와 같다. 한 가지는 왼쪽 방향으로 수평으로 1미터쯤 가다가 갑자기 마음을 90도로 바꾸어 수직으로 성장하였다. 두 수직선은 여러 갈래의 가지를 형성하였다. 그 수직선은 중량감과 방향감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서로 균형을 잃지 않고 서로 강조하면서 활기가 넘쳐흐르고 승리감과 쾌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이두 그루뿐만 아니라 모든 구상나무가 당당한 존재로 자기 몫을 다 하고 있다.

 

 식물이란 땅속에 몸의 일부를 붙박아서 이동하지 않으며 뿌리․줄기․잎 꽃을 갖춰져 완성된 것이지만 고사목은 그것들이 없어도 그 형태로 존재를 나타낸다. 바로 무존재감을 표현한다. 무존재라는 것은 한정되지 않은 존재로 변화에 당면하여 변화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것. 사물들이 남아서 존속되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 조정되어서 항상 무형적인 상태로 되는 것을 말하며, 시간과 시점이 변하게 되면 그 상태는 또 바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고사목 사이에 있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모두 지워져 미약해 보인다.

   

 

 

 

 무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고사목은

 고고하고

 도도하며 초연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알고 있던 구상나무이다.

 

 무엇이든 모르는 것이 있다고, 또 잘못 알고 있다고 그리 허물이 될 수 있을까. 이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 속에서 모든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느끼며, 또 다른 섭리의 한 부분으로 무존재를 알고 깨닫게 되었다.

 

구상나무와 무존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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