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문학회

아날로그시대의 향수 /홍승숙

갑자기여인 2012. 6. 29. 15:46

 

 

아날로그시대의 향수/홍 승 숙

 

                                       충남 당진출생

                                                모던포엠 수필등단, 한결문학회 회원

                                                          공저 ‘나는 인생의 작가다’외 다수

                                                          숙명여고, 이화여대 사회생활과 졸업

                                                          서울 중앙여고 교사 역임  

아날로그시대에서 고도의 첨단문화, 디지털시대로 접어든 지가 언제부터였나?

급변하는 시대를 따라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에 적응하며 도약하는 젊은이들과 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줄기차고 숨 가쁘게 노력하며 달려보았지만 결론은 역부족이다.

일차산업시대의 농촌에서 태어나 아날로그 생활 속에서 보고 듣고 배우며 성장해온 우리세대다. 일상생활의 모든 과정을 성인이 다 되어 최첨단의 생활로 전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지금도 컴퓨터 앞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웬만한 것은 펜으로 쓴다. 몸에 밴 절약의 습관은 광고지의 깨끗한 이면지조차 버리지 못하고 모았다가 늘 메모지로 사용하며 글씨를 쓴다. TV를 보면서 색다른 요리내용이나 유용한 생활정보, 잡다한 신변잡기의 단편적인 내용들은 펜글씨로 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컴퓨터 사이월드에 들어가면 일기나 가계부를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수입지출 내용이 월별 그래프로 표시되고 자동으로 통계가 나오니 매우 편리하여 가끔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번번이 컴퓨터를 켜고 들여다보는 것 보다는 공책을 펼치고 한눈에 죽 훑어보는 것이 훨씬 더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지니 어쩌랴! 계산기 보다는 머리를 쓰는 전통방식의 계산이 마음에 와 닿는다.

과거 교사시절에 한 학기를 마치고 성적일람표를 제출할 때마다 학생들의 교과목점수와 학생별 점수의 총점합계를 가로 세로 맞추기 위해 바쁜 때가 있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계산기를 이용했지만 나는 주판을 사용했다. 주판에 익숙지 못해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자동으로 합계가 나오는 계산기 보다는 내가 주판알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움직여 계산하는 것이 더 정확할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학생들이 숙제를 위한 학습정보나 자료까지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찾는 편리한 시대다. 이렇게 즉석에서 얻은 답을 빠르고 쉽게 프린트 하면 숙제는 완성된다. 이토록 편리한 학습방법이 자라는 아이들의 두뇌활동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까 걱정된다. 과제와 관련되는 여러 종류의 자료와 책을 찾아 읽어보며 다양하고 폭 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지난날이 더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스펀지처럼 흡수력이 왕성한 어린 학생에게는 많이 읽고 쓰고 체험하는 일이 그들의 인성과 인격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인터넷이 숙제도 해 주고 여론도 조성하고 판단도 내려주는 세상이 되었으니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학생들은 글씨를 쓸 기회가 없어 손이 무디어지고 안정감, 집중력, 사고력이 모두 퇴색된다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요즈음 학생들이 차분히 앉아서 글씨를 바르게 잘 쓰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글씨를 쓸 기회가 많지 않지만 어쩌다 젊은이들의 균형감각 없는 불안정한 글체를 대하노라면 아름다운 우리 한글을 무색하게 할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글씨 쓰는 연습을 통하여 정신을 수양하며 집중력과 정서적인 안정을 키워줄 필요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나는 간단한 잡지나 가벼운 문학지는 지하철을 이용할 때 읽는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셀 폰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글을 쓰기는커녕 읽는 문화조차 실종된 것이다.

나는 어느 곳에서든지 책장 넘기는 소리와 펜글씨 사각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수 없는 그 소리가 그리울 뿐이다.

가정 안에서조차 전자기기의 활용도가 높아짐에 따라 부모자식이나 가족 간의 대화가 끊겨지고 있다.T V나 컴퓨터, 아이패드, 스마트폰 등을 가지고 각각의 취향과 목적에 따라 따로따로 시간을 보낸다. 함께 하는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 여기서 오는 소통의 단절은 결국 현대병의 하나인 우울증과 정신질환으로 이어져 커다란 사회문제를 제기한다.

최근에는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디카 카메라가 인기다. 너도 나도 여행지에서 신비로운 풍경이나 인상적인 문화유적을 부지런히 찍는다. 이 사진들을 컴퓨터에 저장하거나 간단하게 디스켓이나 유에스비에 담아놓고 수시로 볼 수 있도록 따라 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저장 해 놓고도 나는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몇 십장씩 현상하여 여행지별로 앨범을 만들어 쌓아놓고 가끔씩 펼쳐본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펼쳐보는 재미가 컴퓨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못 말리는 아날로그 인생이다.

전화기의 보급과 이메일의 편리한 기능은 따스한 정이 오가던 친필 편지문화를 쫓아낸 셈이다. 나부터도 엄마께나 해외에 있는 자녀에게 종종 편지를 주고받으며 정을 쌓았다. 편지 내용을 통해 마음을 읽고 모습을 상상하며 긴 여운을 즐기곤 했다. 그러나 이젠 전화 한 통화로 간단히 소통하고 용건을 끝낸다. 그 뿐 아니라 스카이 폰을 통해 얼굴을 맞대고 사는 모습까지 보면서 이웃처럼 얘기하는 좋은 시대가 되었다. 때로는 긴 문장의 글을 통해 감정을 포장하기도 하고 미사여구를 동원해 가며 내 마음을 과장하여 표현할 수도 있었는데 ……. 간단한 대화로는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가끔 나는 손자손녀에게 긴 문장의 편지를 쓴다. 아이들의 교육과 정서를 위해. 그러나 답장은 이메일 몇 줄에 그치니 늘 서운하다. 메아리 없는 산울림처럼. 그들은 긴 문장의 글쓰기를 못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주부들에게는 각종 요리를 위한 최신 주방기구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나도 한 때는 거기에 현혹되어 휩쓸린 적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냄비 하나면 못할 요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롭고 이색적인 메뉴로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보아도 김치와 된장찌개가 가장 입에 잘 맞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옛것만 고집하는 구태의연한 생활을 고수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최첨단의 디지털시대에 도태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한다.

젊은 후세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배워야 하며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마음 한편으로는 우리 후손들의 삶이 획일화되어 기계적이고 초스피드적인 상황으로 변질 되어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자아성취와 생존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이기심과 독선으로 가득한 각박하고 비정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모습이 불안해 보인다.

일찍이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는 가장 바람직한 생활철학으로 치우침과 변함이 없는 중용지도(中庸之道)에 대해 말씀하신바 있다.

또한 그리스의 이상주의 철학자 플라톤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행복 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플라톤의 행복론>

첫째는 희망하는 의 식 주를 채우기에는 조금 부족한 재산,

둘째는 모든 사람의 찬사를 받기에는 약간 모자란 용모,

셋째는 자만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는 힘겨루기에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는 자기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을 정도의 말솜씨,

위의 내용을 통해 인간생활에서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행복의 조건임을 말해준다. 차고 넘치는데서 오는 자만보다는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연습하며 자족하는 삶이 인생의 행복임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삶에 여유가 넘치는 내용이다.

나는 급변하는 한 시대를 살면서 변화와 정체성 사이에서 늘 갈등하며 고뇌하고 있다. 따라가기 힘든 새 시대의 새 문화를 포용하며 받아들이는 한편 좋은 옛것은 간직하고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리라. 마음을 활짝 열고 넓은 세상의 새로운 세대와 소통을 이어가리라.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옛것이 정겹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