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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수상 작품집 고산문학 대상
김종길 『해가 많이 짧아졌다』外
< 가을 >
김종길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가을이다.
아 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부부>
어두운 부뚜막이나
낡은 탁자 위 같은 데서
어쩌다 비쳐드는 저녁 햇살이라도 받아야
잠시 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쌍의 빈 그릇.
놋쇠든, 사기이든, 오지이든
오십 년이 넘도록 하루같이 함께
붙어다니느라 비록 때묻고 이 빠졌을 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
적잖은 자식 낳아 길러
짝지워 다 내어보내고
이제는 둘만 남아,
이렇게 이따금 서로의 성근 흰머리칼,
눈가의 잔주름 눈여겨 바라보며,
깨어지더라도
함께 깨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부질없이 서로 웃으며 되새겨보면,
창밖엔 저무는 날의 남은 햇빛,
그 햇빛에 희뜩이는 때 아닌 이슬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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