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가을/김종길

갑자기여인 2014. 7. 29. 20:06

제5회 수상 작품집  고산문학 대상

김종길 『해가 많이 짧아졌다』外

 

< 가을 >

 

                                                             김종길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가을이다.

 

아 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부부>  

 

어두운 부뚜막이나

낡은 탁자 위 같은 데서

어쩌다 비쳐드는 저녁 햇살이라도 받아야

 

잠시 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쌍의 빈 그릇.

 

놋쇠든, 사기이든, 오지이든

오십 년이 넘도록 하루같이 함께

붙어다니느라 비록 때묻고 이 빠졌을 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

 

적잖은 자식 낳아 길러

짝지워 다 내어보내고

이제는 둘만 남아,

 

이렇게 이따금 서로의 성근 흰머리칼,

눈가의 잔주름 눈여겨 바라보며,

 

깨어지더라도

함께 깨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부질없이 서로 웃으며 되새겨보면,

 

창밖엔 저무는 날의 남은 햇빛,

그 햇빛에 희뜩이는 때 아닌 이슬 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