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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엽 풍란_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의 기품관객과 배우 2015. 8. 3. 16:25
풍란
이은상(1903~1982)
잎이 빳빳하고도 오히려 영롱하다
썩은 향나무 껍질에 옥 같은 뿌리를 서려 두고
청량한 물줄기를 머금고 바람으로 사노니.
꽃은 하얗고도 여린 자연(紫煙) 빛이라
높고 조촐한 그 품(品)이며 그 향(香)을
숲 속에 숨겨 있어도 아는 이는 아노니.
유월 중순 집을 비울 때
풍란잎 겨드랑이에서 꽃대 3대가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작년 가을 꽃문화협회 행사 때 한 화분씩 나누어 주는 손길이 무안하지 않게 무심히 받아온 것.
이것들이 콩나물 줄기보다 가는 곧은 선으로 신나게 올라오고 있다. 그냥 두고 떠나는 마음 안타까웠다.
보름 후에 돌아와보니
청아한 향기가 가득 차고 부드러운 하얀 곡선이 달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고 있지 않는가
인도네시아의 보고르식물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난꽃이 총집합되어 있는 난 하우스가 있다.
색채도 화려하고 크기도 다양한 난들이 많지만
이은상시인의 시처럼 그 품이 높고 조촐하며 그 향은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그윽한 향기
보령의 한 고가을 찾았을 때, 쌓여 있는 옛기왓장
체면 염치불고하고 욕심내는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는 지 황회장이 몰래 차에 실어준 기왓장,
그 위에 풍란을 앉힌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다.
제주도의 하루방과 하루멍으로 고정시키고 이끼를 덮고
비슬산 바위에서 몰래 채취해 주먹 속에 담아온 이끼도 다같이 모아 놓았다.
ㅋㅋㅋ 반도둑의 작품이 되어버렸네
2015년6~7월 갑자기 촬영
지리산의 산신인 성모신(聖母神) 마야고(摩耶姑)는 사랑하는 반야(般若)를 기다리면서 나무 껍질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짰단다. 그리고 그 베로 옷을 만들어 천왕봉에서 기다렸다. 구름에 휩싸인 마야고의 앞을 스쳐 쇠별꽃밭으로 갔다. 쫓아가 잡으려고 했으나 잡지 못해 화가 난 마야고는 만들어 둔 옷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그것들은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걸려 나부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은 마야고는 반야를 현혹시킨 쇠별꽃을 지리산에서 피지 못하게 하고 천왕봉 꼭대기에서 성모신으로 좌정하였다. 그후 마야고가 찢어서 버린 옷의 실오라기들은 풍란이되어 지리산에서 서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한상수의 『한국인의 신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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