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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원화
"(…)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寞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 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위의 시는 백석(1912~1995)시인의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고향」이란 시의 일부분입니다. 시집을 여는 순간, 백석의 영생고보 교사 시절의 사진이 눈에 띄었습니다. 늦가을 내리는 비의 빛깔인양 흐릿한 사진 속에서 여러 줄로 앉아 있는 까까머리 학생들. 저에게는 아흔중반을 넘기신 큰오라버님이 계십니다. 오라버님은 바로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영생고보를 졸업하셨습니다. 고향이란 부모님이 태어나 자란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어쩔 수 없이 떠나와 그리워서 꼭 다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옛사진 속에서 큰오라버님을 찾는 두 눈의 설렘, 이것이 바로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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