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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시 모음_시인 예수, 그는

갑자기여인 2016. 3. 24. 21:57

정호승 시인의 시

 

 

시인 예수/정호승

 

그는 모든 사람을

시인이게 하는 시인

사랑하는 자의 노래를 부르는 새벽의 사람

해 뜨는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고요한 기다림의 아들

절벽 위의 길을 내어 길을 걸으면

그는 언제나 길 위의 길

절벽의 길 끝까지 불어오는 사람의 바람

 

들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용서하는 들녘의 노을 끝

사람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워하는

아름다움의 깊이

 

날마다 사랑의 바닷가를 거닐며

절망의 물고기를 잡아먹는 그는

이 세상 햇빛이 굳어지기 전에

홀로 켠 인간의 등불

 

 

그는/정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시간을 맞이했을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