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강우식시집 <바보 山水 가을 봄> 중에서

갑자기여인 2020. 1. 13. 23:37

강우식시집 《바보 山水 가을 봄》 중에서

 

 

풀밭에서/강우식

 

 

누워서야 내 구두 밑창은

눈물나게 빛나는

가을 햇볕을 볼 수 있었다

 

산허리에 걸린 구름처럼

신발의 어디쯤에

꿈을 매달고 사는 것 같으나

 

또 내 인생의 몇 번쯤은

여름날의 곰팡이가 증발된

풀밭에 누워 해바라기 한 것 같으나

 

나의 발들이 어떻게

수많은 길과 푸른 풀밭을 인도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허무한 것조차 꿈이 될 수 있는지

담배 연기로

만들은 동그라미는

ㅇ· ㅇ· ㅇ 모음을 보여주며 떠난다

 

눈물방울도, 눈동자도, 세계도, 우주도

이제 고리를 풀 때다

 

 

 

                                                                                                              2019. 9 갑자기 촬영

 

 

 

기도

 

 

거미 한 마리

하늘에다 은실로 꽃을 만든다

 

이제는 하루살이조차

日用할 양식으로 걸려들지 않는

계절의 노동

 

썩힐 것이 없는

바람은

오늘도 무사통과다

 

주여,

印朱빛으로 찍힌 듯이

몇 낱 감이

살덩어리로 살덩어리로 타는

이 가을 하늘 한 구석에서

 

주여,

살아 있는 동안의

이 어여뿐 노동을 굽어보시옵고

보소서.

 

거미 한 마리

하늘에다 은실로 꽃집을 짓는다.

 

 

 

나만 보면

 

하늘도

그리우면

물빛되어

흐른다

 

나만보면

괜스리

돌아서던

사람아

 

가진 맘

되비쳐보면

하늘이고

물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