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식시집 《바보 山水 가을 봄》 중에서
풀밭에서/강우식
누워서야 내 구두 밑창은
눈물나게 빛나는
가을 햇볕을 볼 수 있었다
산허리에 걸린 구름처럼
신발의 어디쯤에
꿈을 매달고 사는 것 같으나
또 내 인생의 몇 번쯤은
여름날의 곰팡이가 증발된
풀밭에 누워 해바라기 한 것 같으나
나의 발들이 어떻게
수많은 길과 푸른 풀밭을 인도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허무한 것조차 꿈이 될 수 있는지
담배 연기로
만들은 동그라미는
ㅇ· ㅇ· ㅇ 모음을 보여주며 떠난다
눈물방울도, 눈동자도, 세계도, 우주도
이제 고리를 풀 때다
2019. 9 갑자기 촬영
기도
거미 한 마리
하늘에다 은실로 꽃을 만든다
이제는 하루살이조차
日用할 양식으로 걸려들지 않는
계절의 노동
썩힐 것이 없는
바람은
오늘도 무사통과다
주여,
印朱빛으로 찍힌 듯이
몇 낱 감이
살덩어리로 살덩어리로 타는
이 가을 하늘 한 구석에서
주여,
살아 있는 동안의
이 어여뿐 노동을 굽어보시옵고
보소서.
거미 한 마리
하늘에다 은실로 꽃집을 짓는다.
나만 보면
하늘도
그리우면
물빛되어
흐른다
나만보면
괜스리
돌아서던
사람아
가진 맘
되비쳐보면
하늘이고
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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