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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재구의 인도기행 <시간의 뺨에 떨어진 눈물>을 읽고
    관객과 배우 2020. 6. 12. 07:09

      "그날 이후, 내게 축제의 시간이 있었다. 인도 민화를 찾아 인도 전역을 헤매고 다닌 시절이 그것이다.

    먼지와 악취, 오물 범벅인 인도의 거리를 걷는 것이 좋았다. 몸을 한없이 학대하며, 고행에 가까운 시간을 통과하다 보면 문득 눈앞에 화가의 마을이 펼쳐지고 활짝 웃는 그들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때 마음 안에 작은 샘물이 솟구친다."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인도 전통 화가의 삶 속에는 인간과 신, 자연이 함께 빚은 우주의 품격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시간의 뺨에 떨어진 눈물》은 '타고르의 이상향에서 인도 민화를 만나다', '인간과 신들이 함께 펼쳐내는 화사한 꿈', '시간의 뺨에 떨어진 눈물', '사막에 핀 시간의 꽃',  '시가 필요 없는 세상에서 쓴 인간의 시' 등 아름다운 시적 제목으로 씌어져 있습니다. 이 기행문을 읽으면서 하나의 짧은 시, 하나의 긴 시로서 인도의 꽃길, 마을을 여행합니다. 작가가 여행하면서 쓴 시를 옮깁니다.

     

     

     

     

    *화가

     

    그의 이름은

    타판치트라카르 포투아

    먼 미드나푸르에서 왔다고 한다

    낡은 삼베 가방 안에서

    그가 그린 그림들이 쏟아져나왔다

     

    아침에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밥을 먹은 다음에 그림을 그리고

    더우면 호수에 들어가 멱을 감고

    다시 나와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소가 풀을 뜯을 때도 그림을 그리고

    원숭이가 숲 사이를 뛰어갈 때도 그림을 그리고

    샛별이 흙냄새 풍기는 추녀를 기웃거릴 때까지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 첫 햇살에 기도를 드리고

    붓을 잡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타판치트라카르 포투아

    미드나무푸르에서 버스를 타고

    두 번 기차를 바꿔 타고 왔다고 한다

     

    짐승과 함께 타는 비하르에서 오는 그 기차를 나는 안다

    열차 한 칸에 백 명인지 이백 명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태우고

    흉흉한 열차강도 소식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리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밤기차의 누런 기적 소리를

    나는 안다

     

    다섯 달은 그림을 그리고

    한 달은 떠돌며 그림을 판다

    처음 들른 마을의 외양간에서 소와 함께 잠을 자고

    날 밝으면 다른 마을로 떠난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타판치트라카르 포투아

    아직 그림 한 점 팔지 못했고

    오늘 밤은 호숫가 성황당에서 잘 거라고 한다

     

    낡을 대로 낡은 그림 가방을 등에 메고

    그가 석양 속으로 떠나는 동안

    시를 쓰고 살았다는 지상의 내 이력이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우다이푸르 익스프레스

     

    삼등 침대칸 차창에

    별 두개 떴다

     

    엄마별

    아가별

    손잡고 어디로 가나

     

    올해는 재스민꽃이 많이 피어

    한나절에 꽃목걸이 서른 개도 만들 수 있다네

     

    꽃 사세요

    꽃 사세요

    눈이 먼

    라자스탄 아가씨

     

    재스민꽃 향기 닮은 목소리로

    새벽 기차 안을 지나가네

     

     

    *길

     

    아주 먼

    길이 있었네

     

    그대와 나

    두 개의 그림자 이승에 남겨두고

    그 길 들자 했지

     

    하얀 소 떼들

    설산 그림자를 따라

    느릿느릿 걷는 호수가의 길

     

    약속보다

    하얀 뼈보다

    뒤에 남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림자의 길

     

     

    *종리나무숲에서

     

    세 아름

    네 아름 나무들은

    저 홀로 바람 만드는 법을 알지

     

    어린 반딧불이 한 마리가

    어둠 속에 첫 호롱불을 켤 때

    바람은 호롱불 곁에 다가와

    먼 곳으로 떠난

    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당신과 나

    신은 아니지만

    세 아름 네 아름 마음 밭을 일구며

    생의 바람을 빚으며

    깃발들과 연기를

    춤추게 하지

     

    당신과 나

    호수를 건너는

    외로운 반딧불이일 뿐이지만

     

     

    415페이지

    *밤이 아무리 깊어도

    어둠이 범접하지 못하는 선線이

    설산 주위에 있다

    부처 자리의 별들과

    목마 자리의 별들이 빛나고

    반대편 하늘에 북두칠성이 떠 있다

    히말리아시다들은

    설산을 오르기 위해 애를 쓴다

    설산을 사랑하는 법인지도 모른다

    비가 거칠게 왔을 때

    산이 쪼개지는 것 같았고

    다음 날 햇빛이 찾아왔을 때

    마을은 한층 평화로웠다

    사나무에 매달린 사과알들이 보석 같았다

    나는 매일 숲길을 거닐다가

    해질 무렵 송전탑이 있는 마을로 돌아왔는데

    그럴 때면 송전탑에 칠해진

    벽돌색과 흰색의 페인트 빛깔조차

    인간의 숨소리만큼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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