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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달자_<저기 그의 집이 있다>를 다시 읽으며
    수필은 시도다 2020. 8. 14. 21:25

    「저기 그의 집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집을 멀리서 바라보는 일은 가슴 떨리는 일이다.

       우연히 지나치다가 먼발치에서 바라보게 되었거나 마음을 작정하고 일부러 찾아가 어느 집 골목 옆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집을 바라보는 일은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그의 집을 바라볼 때는 절대로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비스듬히 몸을 숨기고 눈을 크게 뜨지도 못한 채 흘깃 거리며 보게 된다. 보고 있는 그 사람을 누가 지켜 보는 것도 아닌데 마치 못 볼 것을 보고 있는 죄인 같은 모습으로 어느 집 하나를 애절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 것도 안 보는 것처럼 그냥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시늉으로 남의 눈치를 살피며 위험한 사다리를 올라가는 조심스런 마음으로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이다.

    (··· )

       저기 그의 집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집을 멀리서 바라보는 일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그 아픔은 원망이나 상처받는 아픔은 아니다. 더욱 야단스러운 통곡이 있는 그런 아픔도 아닌 것이다.

       가슴이 저릿하게 금이 가는 아픔, 입술을 물고 잠시 호흡을 중단하는 그런 아픔, 눈 안이 상기되고 젖어 오는 아픔, 어쩌다가 눈을 감으면 토란잎 위에 뒹구는 빗물 한 방을 같은 눈물이 앵두알처럼 열리는 그런 아픔 ······.

       그렇다. 그 아픔은 버리고 싶은 아픔이기보다 오히려 간직하고 싶은 그런 아픔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정든 아픔, 좋은 아픔, 비단실같이 부드러운 슬픔, 크리스탈처럼 맑은 슬픔, 이런 말이 허용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슬픔이다.

       멀리 있는 그의 집을 바라보면 이렇게 늘상 봄 아지랑이 같은 슬픔이 고이는 것이다.

     

    시인 신달자 작가는 1989년도 대한민국 문학상 외 다수 수상한 바 있습니다.

    이번 제24회 만해대상 문예부분에 대상도 수상하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그의 에세이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1990년도 자유문학사 발행)라는 수필집을 찾아 다시 읽었습니다.

    오랜 전에 흡수했던 순수한 감동과 벅찬 설렘을 주던 에세이 중에서 <저기 그의 집이 있다>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그의 집을 바라볼 때는 절대로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비스듬히 몸을 숨기고서야 바라보았던 그 마음"을 노년에 접어든 지금의 저에게도 가슴저리게 다가옵니다. 역시 명 수필은 예나 지금이나 명작임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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