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잠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종암동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
현관에 들어 선 아버지는/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시냐고 물으니/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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