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기다리다_정재찬

갑자기여인 2022. 3. 23. 18:08

《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기다리다

 

   상식을 뒤집은 것이 상식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상당하다. 생텍쥐페리Saint-Exupery,1900~1944의 《어린 왕자》도 바로 그런 경우, 처음 읽었을 때는 상식 밖 인물이었던 '어린 왕자', 그도 이제는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인지가 바뀐다고 해서 곧장 습관이나 태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상식적으로' 인정하기 힘들다.

   《어린 왕자》 속 '여우'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기다리는 이가 네시에 온다면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라던,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게 될 거라면 여우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다린다는 것을 "어느 하루를 다른 날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 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우린 얼마나 고개를 끄덕이고 또 다짐을 했던가. 하지만 지금도 과연 그러한가? 잠시를 못 참는다. 아니, 참을 필요조차 없어졌다. 약속 시간에 늦는 이도, 기다리는 이도 휴대 전화 한 통화면 쉽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는 단순한 전화가 아니라 시간 관리까지 해 주는 우리의 매니져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이젠,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엔 과연 어떻게 연애를 할 수 있었나, 신기하고 의아할 정도다. 그 시절 차는 밀리고 연락은 안되고 그러니 늦는 이는 늦는 대로 발을 동동 구르고, 기다리는 이는 기다리는 대로 처음엔 그러려니 싶다가, 그래도 안 오면 슬슬 화가 나다가 그 정도가 심해지면, 오다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혹시 약속 시간이나 장소를 자신이 혼동한 것은 아닐까, 오만 불안이 엄습해 오곤 하지 않았던가, 책을 읽다가 낙서를 하다가 음악을 듣다가 성냥개비를 쌓다가 하던 그 숱한 기다림의 시간들, 그것은 과연 비효율, 비합리 시간의 낭비뿐이었을까? 짧은 기다림이 아니다. 기다림은 기다랗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착어 着語  : 기다림이 없는 사랑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 두부 장사의 핑경 소리가 요즘은 없어졌다. 타이탄 트럭에 채소를 싣고 온 사람이 핸드마이크로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어디선가 병원에서 또 아이가 하나 태어난 모양이다. 젖소가 제 젖꼭지로 그 아이를 키우리라. 너도 이 녹 같은 기다림을 네 삶에 물들게 하리라.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시인의 말대로라면, 불과 5분 만에 쓴 시라고 한다. 하지만 쓴 시간이 5분이지 기다린 시간은 족히 한 시간은 됨 직해 보인다. 기다려 본 사람은, 아니 기다려 본 사람만이 안다. 기다림이란 희망과 불안의 교차점이란 것을......

  ............

  정말 그리운 것은 그 '녹 같은 기다림'이다. 삶이 녹슬 정도로 기다리는 그 간절함이 그리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