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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_<시(詩)>관객과 배우 2022. 6. 23. 14:12
「시(詩)」_최영미
나는 내 시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손때 꼬깃한 지폐
청소부 아저씨의 땀에 절은 남방 호주머니로 비치는
깻잎 같은 만 원 한 장의 푸르름
나는 내 시에서 간직하면 좋겠다
퇴근길의 뻑적지근한 매연 가루, 기름칠한 피로
새벽 1시 병원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시
반지하 연립의 스탠드 켠 한숨처럼
하늘로 오르지도 땅으로 꺼지지도 못해
그래서 그만큼 더 아찔하게 버티고 서 있는
하느님, 부처님
썩지도 않을 고상한 이름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책갈피가 아니라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
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
절간 뒷간의 면박한 허무가 아니라
지하철 광고 카피의 한 문장으로 뚝 떨어지는 슴슴한 고독이 아니라
사람사는 밑구녁 후미진 골목마다
범벅한 사연을 끌어안고 벼리고 달인 시
비평가 하나 녹이진 못해도
늙은 작부 뜨듯한 눈시울을 적셔 주는 시
구르고 구르다 어쩌다 당신 발끝에 채이면
쩔렁! 하고 가끔씩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나는 내 시가
동전처럼 닳아 질겨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