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 12

가는 빛, 너그러이

저녁 설거지하기 싫어 뭉그적거리다가 창가를 내다봤다. 사방이 불그름하다. 앞쪽 베란다로 왔다. 노을이 보랏빛이다. 옷차림은 나 몰라라 그냥 운동화를 신고 내려갔다. 자동차 전신에, 나뭇잎, 땅바닥이 온통 보랏빛이다. 트럭에 쌓여 있는 복숭아도 보랏빛, 탄천으로 내려가다 돌계단 중간에서 한 컷, 맨아래로 내려가 한 컷을 찍는데, 빨간 빛으로 반짝이던 강물이 어두워진다. 다시 계단 위로 오르다가 중간지점에서 한 컷. 계단 맨 위로 오르니 노을은 사라지고 있었다. 순간이다. 그래, 삶이란 노을인 것을, 왜 오늘 하루도 실망하고 후회하고 아파했을까? 그냥 지나가면 됐을 것을. 시인 딜런 M. 토머스는 “하루가 저물 때 노년은 불타며 아우성쳐야 합니다’ 라고 했다. 현실은 그저 수용하고 잠잠하라고만 한다. 가는 ..

수필은 시도다 2022.07.30 (7)

86세 스승과 68세 제자의 합창

86세 스승과 68세 제자의 옛 반창가 부르기 *목발을 집고 걷는 스승의 발걸음은 폭우 속에서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1975년 2월에 졸업한 배재고교 90회, 3학년2반 제자 16명은, 2022년 7월 23일 분당 미금에서 김종상선생님을 모시고 환담을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 라는 배재고교 교훈과 김종상(서울출생 사대부고 서울사범대 연세대학원 졸업 정명고 교장 퇴임)선생님의 3-2반 담임 때 모습 ↑ * 현재 제자들은 대부분 퇴직하였고 아직도 원자력 연구소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자랑스런 제자도 있습니다 *60년을 훨씬 넘긴 세월 앞에서 50여년의 추억을 훑으며 어색하지만 두터운 손 마주 잡고 열창하는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 . ,' 그 소리는 우렁차면서도 ..

관객과 배우 2022.07.27 (4)

매미 에그머니!

"지난 해는 발가벗은 손님이 배 내밀고 매암매암, 반쯤 수면상태의 주인은 울음소리에 행복했다. 내다보고 들여다보고 눈이 마주치면 울음 뚝 그친다."라고 《꽃, 글, 그 안의 나》에 썼습니다. '여보 당신 보러 매미가 왔어' 올해는 여러 마리가 왔지만 그 울음소리는 한번도 듣질 못했습니다. 매미는 자기만의 집을 짓지 않고 나무에 붙어 이슬과 수액만을 먹으며 살고 있답니다. 그런데 왜 고층으로 날아왔을까, 갑자기 터진 기쁨과 슬픔에 기를 펴지 못하고 우므러드는 노년의 친구가 되려고 왔을까? 망충망에 붙어 있는 매미의 손발 놀림과 배바닥의 모습을 보며 새삼 창조주의 신비와 오묘함을 느낍니다 매미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 스프레이로 찬물을 뿌려주었습니다. 에그머니!

관객과 배우 2022.07.23 (2)

박경리_산다는 것

산다는 것_박경리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

관객과 배우 2022.07.22 (2)

쌍둥이, 축복둥이

호호. . . 쌍둥이 녀석들 참 예뻐요. 큰아이 가졌을 때, 미혼인 시누이는 내 배를 보면서 ' 어떻게 해 언니, 쌍둥이 낳겠어' 라고 경망스럽게 방정을 떨었습니다. 걱정과 불안을 느낀 나는 친정 올케에게 일렀습니다. 올케 언니는 "뭐라고? 자기나 쌍둥이 낳지" 하며 나에게 안심하라던 말이 생각납니다. 50 여년 전의 일입니다. 요즘 쌍둥이 세쌍둥이 다둥이의 출생은 곧 축복, 축복둥이입니다. 앞으로 50년 후는 어떻게 변할까요? 욕심을 접어둡니다.

수필은 시도다 2022.07.1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