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속에 그리움 있다/이원화
TV는 사랑을 싣고 지하철은 동시를 싣고 달린다.
요즈음 장거리 갈 때 지하철이 닿는 곳이면 으레 그 것을 이용한다.
지하철을 타면 우선 자가 운전할 때의 긴장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고, 버스안보다 움직임이 적어 늘 책을 가지고 다닌다.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핸드백에서 동시집을 꺼내어 읽기 시작한다.
얼마 전만 해도 돋보기 없이 책을 읽었는데, 이제는 꼭 그 것을 껴야한다. 그런데 동시집은 다른 책에 비해서 활자가 커서 돋보기를 끼지 않아도 된다. 책 내용도 크게 머리를 쓰지 않아도 쉽게 이해가 되고, 읽는 순간부터 맑고 깨끗한 동심의 세계로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또 암기하기도 비교적 쉽다.
평상시 지하철 안에서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 폐를 끼칠까 봐, 두면의 책을 반으로 접어서 보곤 한다. 그러나 오늘은 동시집을 완전히 펴서 읽는다. 책 본문의 바탕색이나 책 속의 그림이 무척 예쁘고 신선하게 편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과 그림을 한꺼번에 즐기고 싶어서 완전히 펴서 읽는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보면, 긴 시간도 절약되고 집에서보다 더 집중이 잘 되는 적이 많다. 지하철 안에는 TV가 없고, 전화소리도 없으며, 또 나를 부르는 사람마저 없기 때문이다.
동시란 어린이를 위한 것, 동심의 세계를 표현한 시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의 내용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 마음에 닿아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데, 옆에 있는 청년이 "저요, 잠깐만요"하면서 그의 오른 손을 내가 읽고 있는 책 위에 급히 올려놓는다. 깜짝 놀라 청년을 쳐다보니, 검정색 옷차림으로 매우 세련되어 보였다. 청년은 보석을 발견한 듯 "고거 잠깐, 찍을 수 있을까요?" 하면서 내 허락을 받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을 가져다 댄다.
마 음
멀고 가까움의 거리가
거울 속에선
유리 한 겹이고
마음과 사랑의 거리가
눈물 속에선
마음 한 겹이다.
(유경환 작 『냉이꽃 따라 가면 』)
청년은 미소 지으며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는다. 나와 같이 동시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목적지에 다 왔나 보다. 예의 바르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나는 가끔 유년시절이 그리워 옛 동요를 부른다.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고드름 따다가 발을 역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아요
각시님 각시님 안녕하셔요/낮에는 해님이 문안하시고
밤에는 달님이 놀러 오시네
고드름 고드름 녹지 말아요/각시님 방안에 바람 들으면
손시려 발시려 감기 드실라
(유지영 요, 윤극영 곡 「고드름」)
잊어버린 과거를 현재에 슬며시 동여매고 싶은 마음인지, 언제부터인가 동요, 옛날 동요를 다시 좋아하게 되었다.
동시는 마음의 고향이다. 고향은 어렸을 때 살 던 곳, 그 곳은 부모님이 계신 곳. 높은 언덕을 뛰어 내려가면, 앞 동네 초가집 울타리 속에서 살던 작은집 식구들, 저쪽 경환이네 큰집 담장 속에서 피어있는 예쁜 꽃들, 그 것들이 바로 동시며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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