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문학회

남의 눈에 잎이 되고 꽃이 되어라/박경우(한결문학회)

갑자기여인 2012. 10. 20. 20:21

 

남의 눈에 잎이 되고 꽃이 되어라

 

 

박 경우

 

 

어머니는 당시로는 늦은 서른다섯에 나를 낳으셨다. 바라고 바라시던 자식을 하필이면 고생 고생하시던 피난지에서 낳으신 것이다. 후에 “갖은 것 모두 잃고 딸 하나를 얻었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전쟁이 끝나고 안정이 되자 부모님은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그러나 전쟁으로 집과 재산을 모두 잃으셨으니 궁핍하긴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외삼촌은 행방불명이 되고, 남매의 생사를 몰라 애태우시던 외할머니는 생으로 굶어 돌아가신 뒤였다. 고생 모르고 사셨던 어머니로서는 실로 견디기 힘든 세월이었으리라. 그러나 어머니는 당신에게 주어진 삶에 순응하듯 궂은일도 스스럼없이 하시며 꿋꿋하게 사셨다. 힘든 일상이었으나 처지를 비관하거나 푸념하시는 일은 없으셨다. 오랜 세월 기다림 끝에 어렵게 얻은 딸에 대한 측은지심, 어떻게든 바르게 키우리라는 다짐이 힘이 되셨을까.

어머니는 잔정은 없으셨으나 옛날이야기는 잘 해주셨다. 소학교밖에 나오지 못하셨지만 전쟁이 나기 전 여유롭게 사실 적에는 소설책 읽기를 좋아하셨고, 연극이나 영화도 좋아하셨다고 한다.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저녁을 굶으면서까지 다니셨다는 분이다. 그런 연유로 이야기 거리가 많으셨다.

어머니가 해 주신 것 중에 자세히는 아니어도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상처한 홀아비가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았는데, 재혼을 해 아들 둘을 더 얻었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세 아들을 데리고 길을 나서게 되었다. 가다 보니 후처가 난 아들 둘은 별로 추워하지 않는데 유독 전처가 난 아들만 사시나무 떨듯 했다. 이상히 여긴 아비는 아들들이 입고 있는 저고리를 조금씩 뜯어보았다. 그러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후처의 아들 옷엔 솜을 두었고 전처의 아들 옷에는 마른 풀을 넣었던 것이다. 이에 대노한 아비는 당장에 후처를 내치려했다. 그러자 전처 아들이 아비에게 간곡히 만류하며 말하기를 “지금 어머니가 계시면 저만 풀옷을 입지만, 만약 다른 새어머니를 모시게 되면 우리 셋 모두 풀옷을 입게 되지 않겠습니까.”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아비는 “과연 네 말이 옳다”하며 후처를 내치지 않았고, 그 후부터는 후처도 마음을 고쳐먹고 잘 살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국문학과 수업시간에 교수님으로부터 이와 똑 같은 얘기를 들었다.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이제껏 그저 그런 옛날이야기긴 줄만 알았는데 고서에 나오는 유명한 글이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그런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궁금하다.

어머니는 또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늘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남의 눈에 잎이 되고 꽃이 되거라.”

절에 가시거나 고사를 지내실 때는 물론, 대 보름날 달을 우러러 보시면서도 이렇게 빌곤 하셨다.

“딸자식 하나 있는 거 그저 남의 눈에 잎이 되고 꽃이 되게 해 줍시사.”

그 말씀은 내가 커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살 때까지도 이어졌다. 그땐 늘 하시는 말씀이려니 했을 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 가신지 아득한 어느 날 불현듯, 수없이 들었던 그 말씀이 어머니의 한량없는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결같은 어머니의 염원, 소박하고 아름다운 기도였다는 생각이. 그러자 뒤늦은 회한이 아픔을 넘어 참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밀려왔다.

세상에, 잎보다 꽃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어디 있을까. 남의 눈에 그렇게 보이라니 그보다 더한 축복은 없으리라. 어머니는 그 같은 생각을 어떻게 하셨을까. 화려한 것 보다는 꾸미지 않은 듯 수수한 멋을 좋아하셨고, 드러내기보다는 속사랑이 깊으신 분이셨으니 그 같은 생각을 하셨으리라. 진즉에 귀담아 들었다면, 내 삶이 좀 더 아름다웠을까. 그동안 소중한 말씀을 얼마나 많이 놓치고 살았을까. 어머니는 물질로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당신의 사랑법으로 채워주신 것이다. 행여 당신 딸이 가난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도록, 심성을 바로 갖게 하는데 공을 들이신 것이다. 이제 어디서 그처럼 넘치는 사랑을 받을까.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왜 지나간 뒤에나 깨닫게 되는지.

이제 나도 내 자식들과 막 돋아나는 잎처럼 어여쁜 손자 손녀에게 기원하리라. 마음 다해 기원하리라. “남의 눈에 잎이 되고 꽃이 되어라.” 설혹 그 애들이 나처럼 오랜 뒤에 그 뜻을 알게 된다 해도, 아니 영영 모른다 해도 내 염원이 그 애들을 지켜 주리라. 내 어머니가 나를 지켜주셨듯이. 아직은 이보다 더 아름다운 기도를 알지 못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