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분리수거함/이원화

갑자기여인 2013. 3. 28. 20:47

 

분리수거함

                                                                                   이원화

 

   고양이를 피해 구멍으로 들랑거리는 쥐처럼 무엇을 만들어 먹을까 궁리하며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빔밥이 먹고 싶다던 남편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보통 비빔밥은 나물 몇 가지에 고추장만 넣어 비비면 되지요. 그런데 우리 집은 여남은 나물에 국물이 있어야 되고 불고기를 얹어야 좋아합니다. 아시다시피 나물은 손이 많이 가고 불고기 역시 얼마나 많은 양념이 들어갑니까. 그래도 남편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며 맛있게 만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우리 부부는 정답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간이 잘 맞아 나물 맛도 좋고 불고기 양념도 달지 않게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서로 칭찬을 아끼지 않고 비빔밥을 먹으며 술 한 잔도 곁들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루에 겪었던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운동하며 봄을 느꼈다는 얘기, 물가가 비싸서 장보기 힘들었다는 얘기, 국제전화로 망신당한 일 등 숨김없이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다가 말소리가 커졌습니다.

   얼마 전 홀로 된 친구가 멋진 사람을 새롭게 만나 아주 행복하게 데이트를 즐긴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외로운 싱글인 양 한숨까지 내쉬며 친구의 입장을 부러워하였습니다. 바야흐로 서로가 부부임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주고받던 내용과는 달리 말꼬리를 잡아 화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솔직한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설거지를 대충하고 모아놓은 쓰레기를 들고 나갔습니다.

   초등학교 신입생처럼 커다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쓰레기통이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날과 달리 넓은 가슴으로 서 있는 듯했습니다. 쓰레기들을 수거함에 하나하나씩 분리해 넣었습니다. 사람의 감정도 몇 가지로 분류해 처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