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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상사에서
    가족이야기 2013. 11. 1. 19:49

     

        

    길상사에서

     

                                                                    이원화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봄볕보다 더 따뜻하고

    가을 하늘보다 더 맑은 분이셨습니다. 

     

     

    오늘 지인들과 길상사를 다녀왔습니다.

    마침 49제를 마치고 탑돌이 하는 스님과 상주를 보면서

    어머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직장생활 핑계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막내인 저를 며느리 삼아 주셨지요.

    더욱이 어머님의 종교와 다른 종교를 가진 것도 섭섭하셨을 텐데,

    어머님이 제일 특별히 여기는 둘째 아들은

    저로 하여 교회에 등록도 하고 또 세례까지 받으며

    기독교기관에서 결혼식을 하였으니, 그때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이제야 깨닫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혼인하고 며칠 뒤 어머님은 당신께서 다니시는 절에 저를 데리고 가셨지요.

    그곳에서 절밥을 먹게 하고 또 합장하며 어머님과 스님을 따라 탑을 돌았습니다.

    기독교 모태 신앙을 가진 저의 가슴은 방망이로 맞듯 뛰었고, 마치 연옥의 세계로 떨어지는 기분에 얼마나 어머님을 원망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잠깐의 원망은 어느 순간 소망으로 바뀌더니 세월 따라 가버렸습니다.

     

     

    길상사는 깊어가는 가을빛을 더 짙게, 맑은 하늘을 더 높게 하여 주었습니다. 꽃담 집에서 점심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개성 있고 멋진 분이 "어젯밤 늦게 귀가한 남편 손에 케이크가 두 쪽 들려있어 웬 것이냐고 물었더니, 글쎄 어머니 줄려고 사 왔다고 해요. 기가 막혀서……" 하며 말하는 그녀 얼굴이 표지에 그려져 있는 풍경 닮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순간도 참지 못하고 그를 향해 "당신도 늙어보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요즘 세상에 이십 오년 년 넘게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훌륭한 며느리, 그를 다독거리며 예쁜 투정으로 받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머니 품에서 성장하고, 결혼하여 며느리가 되고, 자식을 낳아 시어머니가 되는 그 윤회의 과정을 역으로 행한다면, 다시 한 번 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면 잘 할 것 같은 데요 어머니. 많은 반성은 많은 새로움을 만날 수 있는데 말입니다.

     

     

    '풍경은 바람 없이는 한시도 살아있을 수 없다'라는 법정스님의 시를 생각하며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어머니

    두 손 꼭 잡고 따뜻한 온기 주고받으며

    어머님과 함께 탑돌이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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