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문학회

<지난날 경험이 오늘의 교훈되어>_김주순(한결문학회)

갑자기여인 2019. 9. 28. 23:46

 

 

「지난날 경험이 오늘의 교훈되어」

 

                                                             김 주 순(수필가, 한결문학회)

 

 

 

 

                                                                                                  

탁구를 끝내고 가방을 챙겼다. 내가 입고 왔던 아끼는 검은 니트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옷걸이, 가방, 가방을 넣는 바구니, 어디에도 없다. 그 순간 누가 가져갔나. 분명 입고 왔는데……. 아끼는 옷이라 아쉬움이 많았고, 또 아무 옷에나 잘 어울리는 옷이라 누가 가져갔었을 거야 하는 생각이 순간 뇌리를 스쳐갔다. 그래서 나는 옷이 없어졌다는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눌렀다. 그건 얼마 전 경솔로 인해 실수를 했던 일이 잔재로 남아 나를 아프게 하였기 때문이다.

탁구를 시작한지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그래서 오래된 회원들과 자연스레 친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오래된 멤버들 중 한사람이 뭉치자는 제안을 했다. 가끔 식사와 차를 마시고 외부에 나가서 탁구게임도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모두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번의 모임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게임을 끝내고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던 중 한 남자 선생님이 나에게 개인 카카오 톡을 보내도 괜찮겠냐고 했다. 그분은 우리 팀에서 품격이 높게 평가되고, 점잖은 사람이라 기분 좋게 okay 하였다. 그분은 음악에 조예가 깊고 음악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유익한 음악상식과 다양한 음악을 보내주었다. 좋은 영화를 다운 받아 보내 주기도 하였으며, 지식과 상식을 넓혀주는 좋은 글을 보내 주기도 했다. 나도 열심히 보고 그 내용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서 보내곤 하였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그는 나를 학생 시절에 문학소녀이었냐고 물어왔다. 나는 문학소녀가 아니라, 웃으며 문학할머니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내 글을 읽고 싶으면 수지복지관에 많은 글을 올렸으니 수지복지관 ‘기자의 눈' 에 들어가 보라고 하였다. 그는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좋은 친구를 만나서 너무 좋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나도 오랜만에 대화가 통하는 좋은 사람을 만나 즐거웠다.

그런데……. 생각 못했던 이상한 내용의 카카오 톡이 왔다.

이것은 바로 삭제 될 수 있으니 빨리 보아야 합니다‘ 는 글귀와 함께 ‘성인물, 이거 진짜 죽임, 김하나 전신 노출사진' 이었다. 그 카카오 톡을 보자마자 불쾌감을 감출수가 없었다. 임의롭지도 않은 사이에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런걸 보냈나 하는 생각에 영상물을 열지 아니하고 지워 버렸다. 그리고 주소 란에 가서 이름을 삭제하여 다시는 카톡을 보내지 못하도록 하고, 그것으로 그 불쾌감을 표시 하였다. 그러나 그 분은 그 후에도 탁구장에서 나를 보면 손을 흔들고 반가워하는 것이 아닌가? 남자들은 잘못을 해 놓고도 잘못을 모른다고 하더니 정말 뻔뻔하다고 생각 했다. 옛날 같았으면 나도 웃으며 손을 들어 흔들어주었겠지만,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듯이 시베리아 바람보다 더 차디찬 모습으로 고개를 돌려 그분을 머쓱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지만 그 선생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그 말을 밖으로 뿜어내지는 않았다.

몇 달이 흐르고 그 선생님이 이사를 갔다. 나는 영원히 비밀을 지켜 주리라 마음먹었는데 우연히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실토 하고 말았다. 그 친구는 그렇게 점잖은 사람이 그런 야한 영상물을 보냈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 다음날 진짜냐고 물어보며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면서 남자는 다 똑같아 하였다. 우리는 웃으면서 겉만 점잖아! 하면서 그 사람 인격을 마구 짓밟아 버렸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친구한테서 문제가 되었던 똑같은 영상물을 받았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영상물이기에 아직도 이렇게 떠돌아다니나 하고 열어 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세상에….

‘성인물’은 成人을 위한 映像物이 아니고 聖人이 마시는 성인물이라 쓰인 생수병 사진이었고, ‘이거 진짜 죽임’은 사기그릇에 야채 죽(粥)이 담겨져 있는 진짜 죽 사진이었다. ‘김하나 전신 노출사진’은 어느 여배우의 나체 사진이 아니라 김 한조각의 사진이었다. 난센스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난센스 사진이었던 것이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그것을 열어보고 대처를 해도 늦지 않았을 텐데 나는 너무 경솔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솔로 한 사람을 매도하여 그의 품격에 먹칠을 한 것이었다. 나는 너무 죄송스러워 언젠가 만나면 사과를 해야 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니트 옷을 찾았다. 의자 뒤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만일 누가 내 옷을 가져갔다고, 또 우리 회원 중에 도둑이 있는 것 같다고, 화를 섞어 말 하였다면 여러 사람을 얼마나 불편하게 하였을까. 또 찾은 후 나의 경솔함에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감사하게도 지난날의 경험은 오늘에 교훈이 되어 실수를 막았다.

오늘도 내일도 경솔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하리라.

2019년 7월